오뉴월 하루 빛이 무섭다. 엊그제 몽글 몽글 새싹 돋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부쩍 자라 꽃대 올린 개망초의 모습을 보며 흠칫했다. 저들이 꽃망울 터뜨리고 씨앗 맺기 전에 깎아야 한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여파로 카페 뜨렌비를 찾는 손님도 확 줄었고 아무래도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삶이 느슨해져 풀 깎는 것조차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지난주에 비로소 큰 맘 먹고 예초기를 돌렸는데 다음날부터 계속하여 비가 내렸다.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아주 잘 깎았다. 그날마저 안 깎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고 쑥쑥 자랐을 뿐더러, 더욱 거칠어지고 질겨져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제초작업은 비 내리기 전 연할 때 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멀끔해진 농장 주변은 보는 내내 흡족하다.
모처럼 비 갠 오늘은 눈앞이 맑다. 하늘도 파랗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마저 시원한 것이 쾌적하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
꽃이 다 떨어진 산철쭉 잎에 무늬하루살이 한 마리 살포시 앉아있다. 하루살이도 꽤 여러 종류가 있는데 동양하루살이 못지않게 자주 눈에 띄는 녀석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못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어떤 것은 1주일에서 열흘까지 살기도 한다. 번데기를 거치지 않고 알 → 애벌레 → 성충이 되는 불완전변태이며 애벌레 시절은 물속에서 보내는 수서곤충이다. 성충이 되면 날개가 있어 물속을 벗어나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지만 하루살이에게는 서글픈 사실이 있단다. 입이 퇴화되어 먹을 수가 없다는 것! 즉, 먹는 즐거움이 없는 셈이다. 그렇게 먹지를 못하기 때문에 오래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충은 오로지 짝짓기가 목적이고 짝짓기를 끝내면 삶을 마감한다. 슬프겠다. 하루 이틀밖에 못사는 것도 우울한데 먹을 수가 없다니. 하지만 성충으로 태어나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삶을 걸었다 생각하면 꽤 낭만적이지 않을까?
봄은 개나리꽃의 노란색으로부터 깨어났다. 노랑 꽃으로 시작된 계절은 이제 흰색으로 넘어가고 있다. 개울 건너 아까시나무 하얀 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고 뜨렌비 앞 이팝나무 꽃도 하얗고 소복하게 피었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백당나무도 그렇고 자연에서 만나는 여름꽃은 대체로 흰 꽃이 많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식물에 있어서 꽃이 하는 궁극적인 역할은 그들의 2세를 남기기 위한 수분 및 수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분을 도와주는 매개체 즉, 곤충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앙상했던 가지에 새로운 잎이 달리고 쑥쑥 자라서 숲을 이루는 여름은 온통 초록색이다. 녹음 속에서 흰색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띤다. 용케도 식물은 그것을 알게 되었고, 매개 곤충의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밝은 색, 그중에서도 흰색의 꽃잎을 선택한 것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여느 오색찬란한 색깔의 꽃잎을 만드는 것보다 흰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 했을 테니, 참으로 영특하다.
날 좋은 날, 혹여 야외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맛 집 찾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바뀌는 계절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녹음 짙은 우리나라의 여름꽃을 찾아보고, 어떤 색깔과 어떤 모양으로 피어 어떤 향기를 내는지, 어느 곤충을 유혹하고 있는지 아이와 함께 찾아본다면 꽤 괜찮은 놀이일뿐더러, 아이에게는 즐거운 경험이고, 훗날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