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원사다
나는 정원사다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5.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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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비가 온다는 예보다. 서둘러 비료 포대를 푼다. 작은 양동이에 옮겨 담고, 한 움큼 쥐어 잔디밭에 흩뿌린다. 여태 비료라는 인위적인 양분을 주지 않았는데, 건강하게 자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니 큰 맘 먹고 움직인다.

먹지도 못하는 작물(?)에 이리 정성을 들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매일 아침 동이 트면서 하는 일은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집주변을 청소하는 일과 잔디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 보이는 즉시 뽑아도 뽑아도 손길을 더욱 바쁘게 하는 건 풀씨가 잔디 사이에 자라고 잔디 러너 밑으로 뿌리를 내려 뽑기도 어렵게 하는 아주 밉상인 녀석. 싹이 났으니 그래도 꽃을 피워야겠지, 앙증맞은 풀꽃에 반해, 시기를 놓쳐버린 결과 지금은 잔디만큼 세력을 뻗쳤다. 그만큼 잔디는 쇠약해지고 잡초한테 영역을 내준다. 이러단 잔디밭이라 할 수 없겠지. 잔디 전용제초제까지 생각했지만, 최종 선택은 큰 잡초를 뽑을 만큼 뽑고 잔디의 세력을 강하게 하는 일. 잡초 씨가 떨어져도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없도록 하는 일, 그래서 잔디를 건강하게 키우는 일로 잡초와의 싸움에서 좀 수월해지지 않을까?

이놈의 잔디는 뻗어야 할 곳으로는 안 뻗고, 다른 식물이 자리할 곳으로 뻗으니 영 마땅치 않다. 다른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수분이 적당하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은 잔디도 풀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니, 굳이 커다란 나무 밑의 그늘을 찾아들어 갈 일이 없는 데도, 억지로 심고 또 심었다. 그런들 잔디가 내 바람대로 자라 줄까? 절대 그럴 일 없다. 그늘이 많이 지는 곳은 자연석의 포장석을 깐다.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이끼가 다 덮을 때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끝은 작은 공벌레가 비를 피할 수도 없는 작고 작은 앙증맞은 초록의 우산이 빼곡히 들어찬다는 것이다. 다른 씨앗은 다 구해도, 이끼 씨앗은 구하지 않았다. 구할 수 없는 씨앗이다. 그렇다고 굳이 이끼를 구입해서 식재할 생각도 없었다. 그늘이 지고, 일정량의 습이 지속되는 곳에 어느새 포자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잘 통하는 바람과 함께 나지막이 바닥으로 세력을 넓혔다. 그곳은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 된다. 매일 오가는 벌레들에게 양탄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 벨벳처럼 부드러운 촉각의 이끼는 넓으면 넓은 만큼, 좁으면 좁은 만큼 틈새를 메우며 위로 솟아 나름 덩치를 자부한다. 가장 낮은 바닥에서 자라 나의 몸을 낮추게 하고도 고개를 숙여 안경을 벗고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들숨만 허하고 날숨은 긴 시간 멈추게 한다. 그 시간은 코로 눈으로 담는다.

뜰을 가꾸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피는 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잡초와의 싸움에서 꽃보다는 잡초에 눈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피어 있는 꽃을 보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사랑하는 임을 기다렸건만 죽음을 알았기에 임이 죽은 후에 피는 작약의 향은 슬픔을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복잡 미묘한 심정이다. 나비도 꿀벌도 아닌데 꽃을 눈이 아닌 코로 찾고 음미한다. 향이 없는 꽃이 있다. 하지만, 향을 줄 사람에게만 꽃 향이 난다. 꽃이 없는 풀숲에도 향이 있다. 제자리에서 적당한 조건의 환경이라면 향을 갖는다.

작년에 같은 수종의 수국을 몇 군데로 나눠 심었다. 작은 앵두나무 밑 한 포기, 커다란 감나무 밑 한 포기, 커다란 감나무 가지 끝자락 창포 옆에 한 포기. 작은 앵두나무 밑 한 포기는 한여름 고난스런 시기를 겪었다. 더 많은 양을 더 자주 주었건만 시름시름 앓고 자라지 못했다. 그나마 힘겹게 뿌리를 나름 내렸는지 올해는 왜소한 몸집에 작은 꽃대를 올렸다. 커다란 감나무 밑의 수국은 목대로 제법 굵은 왕성한 세력을 자랑하고 몸집을 키웠다.

오랜 시간 뜰을 가꿔왔다. 식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양도 늘리고 집안 밖으로 면적도 늘렸다. 그런데 아직 식물의 특성을 더 파악해야 할 듯, 체스의 말을 움직이듯 직접 하나하나 손을 대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정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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