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선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 유권자들이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 끼고 길쭉한 투표용지에 조심스럽게 기표했던 별난 선거였지요.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코로나 망령처럼 선거의 후유증이 쉬 사라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180대 103이란 경천동지할 여야 의석분포가 그렇고, 보수와 진보의 각기 다른 셈법이 그렇고, 부정선거 시비와 논란 등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번 총선은 민심의 무서움과 시대의 변화무쌍함과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곱씹게 하는 성찰의 선거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내공이 단단했던 상당수의 정치인이 풋내기 정치신인들에게 맥없이 패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물 정치인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30여 명의 현역 국회의원을 투입하고도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정당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여 이번 총선결과를 진보의 압승과 보수의 궤멸로 보는 이가 많으나 엄밀히 보면 진영싸움에서 진보를 표방한 집권여당이 보수를 표방한 미래통합당을 크게 이긴 것이지 보수의 가치가 진보의 가치에 무릎 꿇은 게 결코 아닙니다.
민심과 시운을 등에 업은 진보진영이 국민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친 보수진영에 손쉬운 승리를 거둔 예견된 결과였지요.
수도권에서의 이런 쏠림현상이 이를 웅변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나이에 따라, 가치관과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개성과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호남지역 사람들이 항상 진보적이어서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이 아니고, 영남지역 사람들이 한결같이 보수적이어서 미래통합당에 몰표를 준 것이 아닙니다.
지역감정과 지역정서에 경도되고 함몰되는 경향도 있거니와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탓입니다.
호남지역에서 민생당과 정의당의 걸출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모조리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도, 영남지역에서 이름 꽤나 있는 보수성향 후보들이 미래통합당 후배들에게 힘없이 지는 현실이 이를 반증합니다.
문제는 양 진영이 상대를 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데 있습니다.
역사와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진화하고 발전합니다. 보수가 현실에 안주하면 진보가 잡아당기고, 진보가 과속질주하면 보수가 브레이크를 밟아 균형을 맞추는 거죠.
그러므로 극우와 극좌가 아닌 합리적이고 따뜻한 보수와 진취적이고 참신한 진보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게 선진정치이고 참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면에서 180대 103의 의석분포는 썩 좋은 구조는 아닙니다.
정권과 집권여당이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는 그야말로 일당독재를 가능케 하는 정치구조이기 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의석수에서는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60%대 34%이지만 지역구 투표결과도 같은 40%대의 지지를 받았고 비례대표투표에선 오히려 야당인 미래한국당이 1위를 차지했음을 상기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집권 4년차에 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70%를 상회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온 터입니다.
오만과 독선과 독주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높은 지지도이기에 노파심에서 지적합니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국회기능은 무디어지고 법의 제정과 개폐를 식은 죽 먹듯이 하면 국가와 국민은 불행해집니다.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의 종말은 탈선과 전복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는 뒷걸음질하고 국가부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환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훨훨 날아야 합니다.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