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오래된 과외 전단 사진을 소개한 글을 봤다. 전단에는 개인 교습을 하며 수학과 물리학 과목을 전 학년 학생 대상으로 철저하게 지도한다고 적혀 있었다. 개인 스펙으로 스위스 연방 이공학 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시범강의를 무료로 한다는 등 요즘 과외 전단 내용과 차이점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전단의 주인공을 알게 되면서 누리꾼의 반응이 뜨거워졌다. 전단의 주인공이 천체물리학 분야에 큰 업적을 만들어 낸 그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물리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알아내면서 우주의 기원과 천체들의 운동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이 제시되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우주를 만든 물질, 중력의 작용, 별과 행성의 상호작용, 물리학적 시공간 등에 대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은 빛의 속도가 얼마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사고실험을 통해 우주공간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물질인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빛은 관측자에 대해서 일정한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움직임을 알아내었고, 이 가정을 토대로 특수상대성이론을 발전시켰다. 더 나아가 수성의 궤도와 태양 옆을 지나는 빛이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해 뉴턴의 중력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강한 중력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중력 이론인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확장시켰다. 이런 연구 결과는 추후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천문학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우주모델들에 대한 기초가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을 위대한 천체물리학자 중 한 명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중요한 학문적 업적이 되었다.
유명한 위인들은 나름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 있고 이런 과정들이 그들의 업적을 돋보이게 한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반유대주의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고 어렵게 재수해 진학한 대학교에서도 학과 공부에 대한 열의가 별로 없어서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민코프스키 등 지도교수와의 마찰에 의해 교수 추천서를 받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전공 관련 직장에 취업할 수 없었다. 돈이 필요하던 중 겨우 보험사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이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서두에 언급한 내용처럼 과외교사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힘들던 중 다행히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베른에 있는 특허국의 서기로 채용됐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특허국에서 보낸 이 시기가 지적 생애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맺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끝까지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동력은 끝없는 탐구와 호기심이었다. 그의 전기를 썼던 작가에게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단지 남들과 달리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원의 신비에 대해, 인생에 대해, 그리고 실재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 생각한다면 누구나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엉뚱한 상상과 호기심이 다른 어떤 물질적 이득보다도 더욱 큰 삶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올해 5세가 되었다. 요즘 말하는 재미를 느끼고 약간의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나이가 된 듯하다. 주변 사물과 현상에도 호기심이 많아 “아빠 이거 뭐야? 왜 그런 거야?”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그 호기심을 해결해주기에는 내 지식이 너무 빈약하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알려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과 직업병은 어찌할 수 없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사랑하며 아인슈타인의 순수한 학문적 열의를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