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여름을 즐겨보지도 못했는데, 들에는 성큼 가을이 내려앉았다. 낮의 길이도 많이 짧아졌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느낌마저 든다. 짙푸른 하늘에, 몽실몽실 떠있는 구름이 박하사탕처럼 산뜻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잎이 무성했던 아로니아가 발그레 단풍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벼 이삭도 누런빛을 띠기 시작했고, 울타리엔 키 큰 해바라기가 고개 숙였다. 꽃 덩어리 속에 들어 있는 그들만의 규칙과 질서는 언제 보아도 놀랍고 신비하다.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한 나머지 꽃이 되었고 그래서 그 꽃은 해를 따라 움직인다는데 정말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것일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고 보니 햇볕 따스한 어느 해 봄날, 뜨렌비 뒤뜰 울타리를 따라 해바라기 100주를 심었다. 자라는 내내 매일 매일 지켜봤는데, 노랗게 핀 해바라기의 꽃은 온종일 그 모습, 그대로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꽃이 아직 달리지 않은 어린 해바라기의 커다란 잎은 아침엔 동쪽, 한낮엔 남쪽, 저녁엔 서쪽으로, 태양의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진 해바라기는 여느 식물에 비해 생장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만큼 많은 양분을 충당하기 위해 부지런히 광합성을 해야 할 터이고,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받기 위해 널따란 잎이 스스로 태양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낮 동안 좋아서 오로지 태양을 쫓아간 어린 해바라기는 깜깜한 밤 혼자서 조용히 돌아가기 시작하여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연히 동쪽을 향해 있고, 다시 떠오를 태양을 기다린다.
태양의 입장에선 참으로 부담 백배이겠다. 지구 상 수많은 해바라기가 오로지 자기만 쫓아오고 있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어쩌면 남다른 이목 집중을 과시하며 으스대는 마음으로 은근히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태양은 자만하지 말고 깨달아야 한다. 잎을 제외한 노랗고 커다란 해바라기의 꽃 자체는 정작 마음이 없다는 것을. 오로지 벌과 나비만을 불러들이고, 정작 그들에게만 꿀을 내어준다는 것을.
해바라기는 꽃 속에 꽃이 들어 있다. 유심히 살펴보면 두 가지 형태의 꽃이 한 덩어리 속에 존재하는데, 흔히 가장자리의 꽃잎이라 부르는 얇고 넓적한 부분은 혓바닥을 닮았다 해서 ‘설상화’, 그리고 가운데 나선형으로 배열된 통 모양의 작은 꽃들은 ‘통상화’로 구분한다. 이 작은 통상화 하나씩마다 제각각 암술과 수술이 들어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수정이 이루어져 하나의 씨앗으로 자라게 되고, 그 작은 꽃들이 잔뜩 모여 하나의 커다란 꽃 덩어리를 이룬다. 이는 국화과의 모든 식물에 해당하는 특징인데, 이렇게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꽃차례를 두상화서(頭狀花序)라고 한다. 두상(頭狀) 즉, 머리를 닮았다는 의미이다. 이야기가 이쯤 되고 보니 누군가 해바라기 꽃 하나 선물했다면 그건 한 송이가 아니라 수백 송이를 선물한 셈이 되는 것이리라. 갖가지 국화를 비롯하여 코스모스, 구절초, 마거릿 등 국화과 식물은 다 그렇다.
공원이나 길가에서 해바라기를 만나거든 자세히 들여다보라. 열매 배열이 일정하고 깔끔하다.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나선형을 이루는 씨앗의 숫자는 피보나치 수열과 꼭 맞게 일치하는데, 해바라기의 열매 배열뿐 아니라, 대다수 식물의 꽃잎 달리는 숫자와 줄기에 달리는 어긋나는 잎에도 태양빛을 받기 위한 1:1.618의 황금 비율, 피보나치 수열이 존재한다니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학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