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 제대로 먹어서 얼얼했어요. 그럼에도 기분은 막 좋았죠. 어쩌면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라고 외쳐도 될 것 같더군요.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직조(織造)를 할 수 있을까요. 어쩜 이리도 농밀하게 맛을 낼 수 있을까요.
러닝 타임(running time) 139분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화였지만, 신비롭게도 처음 본 저를 온통 흔들어 놓았습니다.
감탄의 늪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지,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훌쩍 지나치고 말았지요.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는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바구니가 넘치고도 남았던 겁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처럼요.
영화의 시계는 1994년을 가리켰고, 주인공 은희(박지후 분)는 서울의 여중생 2학년으로 만화 그리기가 취미였습니다.
은희가 청하서당의 한문 선생 영지(김새벽 분)를 만난 것은 그의 인생을 빛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영지가 은희에게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이 있으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라는 뜻을 지닌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이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을 들려준 일도 물론 있었죠.
세상의 큰 벽에 부딪혀 잘못될 것만 같았던 은희는 가장 작은 벌새처럼 위태로웠지만, 영지 덕분에 지치지 않고 날개를 더 빨리 움직여 “날으는 보석”처럼 되었던 겁니다.
눈이 부시더군요. “너는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게 빛나고 있다”라고 은희에게 말해 주고도 싶었습니다.
댄스홀을 위한 뽕짝 스타일로 바뀌어진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로 시작하는 노래 ‘여러분’을 틀어 놓고 어린 은희가 춤을 추던 장면은 영화 ‘마더(Mother, 2009)’에서 도준(원빈 분)의 엄마 혜자(김혜자 분)가 추었던 춤을 연상시키기도 했지요.
큰 슬픔은 언제나 벼락처럼 찾아오고, 알 수 없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아직 남아 있는 게 아닐런지요.
어디선가 다시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벌새가 제 눈에 들어왔고, 가수 정미조가 불렀던 ‘귀로(歸路)’라는 노래에 꼼짝없이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어느 시간 속에 숨어버렸는지/나 그곳에 조용히 돌아가/그 어린 꿈을 만나려나/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높던 해는 기울어가네/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나 그리운 그곳에 간다네/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어느 정도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벌새라 해도, 어느 때든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준 영지와 은희처럼 자신의 손바닥을 보다가 손가락을 움직여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군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