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꽃밭엔 하얀 백합이 있고 봉숭아가 있고 그 아래 채송화도 가득했는데, 오색으로 피어나는 백일홍 또한 한자리했습니다. 특히,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진한 분홍빛을 강하게 뿜어내는 백일홍은 언제 보아도 꼿꼿한 기운이 넘쳐났고 청마담은 그 기운이 좋아서 해마다 뜨렌비 주변에 심고 있습니다. 또한 백일홍은 넘쳐나는 기운뿐 아니라, 하루해가 저물고 하늘이 붉게 물들 즈음, 꽃잎 위로 살그머니 떨어져 내리는 황혼 역시, 한낮의 시름을 잊게 하고 길었던 하루를 거두어들이며, 차분히 그날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바닷가 아리따운 처녀와 한 젊은이의 슬픈 사연이 들어 있는 백일홍은 예쁜 꽃이 백일을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간혹, 꽃집이나 조경하시는 분들이 백일홍이라 부르는 나무가 있는데, 그것은 `배롱나무'가 맞는 이름이고, 백일홍은 나무가 아닌, 한해살이풀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약 200년쯤 전으로 추정되는 백일홍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고 꽃피는 기간도 길어서 예나 지금이나 꽃을 가꾸는 사람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식물 중 하나이며, 시골에서는 어느 집을 들어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에, 백일홍을 못 본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 시골 풍경을 대표하는 꽃일 뿐 아니라 도심의 화단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수수하면서도 정겹게 다가오는 꽃, 어느 시인님의 표현처럼 `자세히 보면 더 예쁜'백일홍인데 혹시, 꽃술을 하나하나 살펴보신 적 있을까요? 백일홍은 그만의 특별한 수술을 갖고 있답니다. 바짝 다가가서 키를 낮추고 허리를 숙여 꽃 속을 들여다보면 안쪽의 가장자리에 노란 색깔의 다섯 개로 갈라진 작은 꽃 모양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백일홍의 꽃술 중 하나인 수술입니다. 꽃 색은 분홍, 노랑, 빨강, 하양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이 수술만큼은 모두 노란색을 유지합니다.
꽃의 구조 중 하나인 수술은 꽃의 진화와 함께 그 모습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는데, 일반적으로 흔한 형태는 수술대 위에 꽃가루주머니인 꽃 밥이 달리는 화사형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수술이 꽃모양으로 변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모양을 전문적인 용어로 `화판상웅예(花瓣狀雄蘂, petaloid)'라 합니다. 화판상웅예(꽃모양 수술)는 닭의장풀에서도 볼 수 있고 채송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는 불임성 수술인 위웅예(僞雄蘂, staminodium)입니다. 즉, 수정을 못 하는 헛수술인 셈이지요.
백일홍은 심어만 주면 튼튼하게 잘 자라고, 7월경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맘때 한창 피고 있으니, 길을 걷다가 혹시 백일홍을 만나거든 조금만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다섯 개로 갈라진, 노랗고 작은 꽃모양 수술의 예쁜 유혹으로부터 가던 걸음 잊고,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땐 마음껏 빠져 보십시오. 사랑과 평화가 그 안에 있어 하루가 뿌듯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것은 식물이 우리에게, 말없이 주는 또 하나의 혜택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