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의 문제
스케일의 문제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9.06.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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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코끼리를 보면 유난히 다리가 굵다. 덩치가 크니 다리가 굵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덩치를 감안하더라도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굵다. 개미 다리는 가늘다. 덩치가 작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덩치를 감안하더라도 개미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가늘다. 왜 그럴까?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하는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판단하는 주체가 사람이니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에서는 이 기준이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몰라도 자연과학에서는 이런 기준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사람의 크기를 10배 확대한다고 생각해 보자. 2미터인 키는 20미터가 될 것이다. 몸무게는 어떻게 될까?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인 사람이라면 600킬로그램이 될까? 아니다. 6000킬로그램? 아니다. 60000킬로그램이나 된다. 다리의 굵기는 어떻게 될까? 10배 더 클까? 아니다. 100배가 된다. 키는 10배, 굵기는 100배, 부피나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왜냐하면 면적은 길이의 제곱이고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10배 확대된 사람을 두고 사진을 찍어보면 그냥 보통 사람을 찍은 사진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의 배경을 없애버린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10배 큰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다리로는 그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능력은 다리의 굵기인데 굵기가 100배 증가한 반면 몸무게는 1000배 증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리의 굵기는 100배가 아니라 1000배가 되어야 그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코끼리의 다리가 유난히 굵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단지 코끼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사에도 크기의 문제는 곳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확장 이전이라는 안내문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렇게 확장 이전한 가게가 이전해서 얼마나 성공했을까? 조사해 보지 않았지만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내 짧은 인생 경험으로도 잘되던 음식점이 새로 증축해서 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왜 그럴까? 바로 스케일 즉, 크기의 문제 때문이다.

작은 가게가 잘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손님들이 그 복작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했을 수도 있고, 서빙하는 친절함과 신속성에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그 좁은 환경에 잘 적응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케일이 커졌는데 주인의 가게 운영방식은 달라진 게 없다면 제대로 운영이 될까?

종업원 10명인 작은 가내 공업은 사장과 종업원만 있어도 잘 운영이 된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사업장이 되면, 사장 외에 부사장, 전무, 경리 보는 사람을 따로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에는 사장이 종업원과 같이 일을 하면서 운영했지만 이제는 사장은 일 대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골프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스케일이 달라지면 그냥 규모만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구조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사업장을 키우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어디 사업만 그런가? 인생사에도 스케일의 문제가 중요하다. 서울시장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대통령까지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스케일의 문제다. 서울시를 잘 운영하는 방법과 대한민국을 잘 운영하는 방법은 다르다. 대한민국이 서울시의 열 배 크기라고 해서 그냥 열 배 열심히 하면 운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와 대한민국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구조가 다르니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우리는 신문과 뉴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것을 보는가? 중소기업만 하고 있었으면 잘 살았을 사람이 대기업으로 키우다가 망하고, 장관이 되지 않았으면 성공한 인생이었을 것을 장관이 되면서 교도소에 가는 것을 말이다. 모두 스케일의 문제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옛말은 스케일에 맞게 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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