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용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기다리던 그날이 와서 영화 `기생충(PARASITE, 2019)'을 보았습니다. 이미 `72회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201 9)'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 그런지는 몰라도, 기대감은 더욱 커진 상태였습니다.
미리 점을 찍어놓았던 상영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긴장감을 덜려면 껌을 씹는 게 어떨까도 살짝 고민했지요. 충성스러운 관객이 되어 131분의 러닝 타임을 함께 달리는 일이 만만치는 않더군요.
질문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영화를 보면서 틈틈이 메모를 했습니다. 어둠 속의 메모는 해독해야만 했습니다. 갈 길을 잃고 겹쳐진 글씨들도 있었거든요.
영화를 보고 제가 만들어 본 질문들을 이렇습니다.
1.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사는 반지하 방에서 세탁한 양말을 말리기 위해 걸어놓은 게 선풍기 뚜껑일까, 새장일까?
2. 영화에 나오거나 언급된 벌레들은?
3. 기우(최우식 분)가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산수경석(山水景石)의 상징은?
4. 박 사장(이선균 분)의 부인 연교(조여정 분)가 말했던 영어 문장 두 개는?
5. “추측”이란 말을 “합리적 의심”으로 바꿔 쓴 캐릭터는?
6. 마음속의 블랙박스는 꼭 열어야 하는가?
7. 기택은 30년 이상 “핸들밥”을 먹었다고 한다. 당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먹고 있는 밥의 이름은?
8. 당신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금단(禁斷)의 열매가 있다면?
9. “부자인데 착한 사람”과 “부자이니까 착한 사람”의 차이는?
10. “이판사판(理判事判)”과 “ 난장(亂場)판”의 깊은 뜻은?
11. “짜파구리”를 만드는 레시피는?
12. 박 사장이 용납할 수 없던 것은?
13.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14. 연교가 말했던 병법의 이름은?
15. 박 사장의 아들 다송(정현준 분)을 위한 번개 생일파티에 쓰인 케이크에 연교가 붙인 이름은?
16. 인디언 코스프레를 선택한 이유는?
17. 모르스 부호로 편지를 써야만 되는 상황은 희극에 가까울까, 비극에 가까울까?
18. 기택 가족이 부업으로 하던 일과 연관된 이탈리아 음식은?
19. 불가피하게 헤어졌던 기택과 기우가 다시 만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20. 연세대, 스카우트, jtbc도 PPL(Product Placement, 제품 간접 광고)이었을까?
봉준호 감독이 경제적 차이로 빚어지는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어떻게 비틀 것인가를 놓치지 않는 게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란 제 예상은 별로였습니다. 지난달 28일에 언론에 먼저 공개된 시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를 떠나 “서로 간에 예의를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상생과 공생을 꿈꿀 수 있지 않나 싶다”고 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관건이었던 겁니다.
영화 `기생충'은 디테일하고, 휘몰아치고, 불안을 잘 다루고, 깽판을 놓고, 다양한 층위의 장르물을 섞은 다분히 `봉준호스러운'작품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화두(話頭)가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