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일춘사(可憐一春事), 덧없어라 올봄도 이런저런 일들이”라는 조선시대 송한필의 시구를 맞닥뜨린 게 3월 18일이었어요. 그는 더할 것도 없는 비련의 인생을 살았다고 전해지더군요. 마음 한 줌도 잡지 못하는 곁눈만 팔다가 알 수 없는 서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진한 눈물을 뿌리지 않으려면, 피어나는 올봄의 꽃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을 했답니다.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별다르지 않은 꽃구경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꾸 바람이 불었어요. 차갑고 힘이 센 바람이었어요. 그러다가 만난 게 중국 청나라 화가 이방응의 `전도춘풍도(顚倒春風圖)'라는 그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봄바람에 뒤집힌 난초를 그렸더군요. 그게 3월의 마지막 날이었지요.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습니다. 마음을 더욱 단단히 가다듬고는 4월의 첫날에 매화를 앞에 두고 `봄'이란 제목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마음에 점 하나로도/모자란다 싶으면/그대 눈동자 흔드는/화인(花印)을 찍어/아련한 봄이 된다오”
4월 8일에는 졸린 고양이처럼 눈꺼풀이 천근보다 무거울 때 산책을 나섰다가, 여기저기 툭툭 터져 나온 민들레꽃들이 대단해서 `민들레 학교'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어디든 가서 꽃을 피우라고/나무의 그늘도 품고서/햇볕의 따가움도 업고서/풀밭이어도 좋으니/담장 밑이어도 좋으니/노란 점묘화를 그리면서/생명의 찬가를 부르라는/민들레 학교”
그 다음 날엔 활짝 핀 목련꽃을 대하고는 막연하게나마 우주의 신비를 떠올리다가 `목련에게'라는 시를 짓고 말았습니다. “멀찌감치 서서/그대의 낙화를 미리 걱정하다가/해와 달과 별도 보내버리고/몸져누웠던 서러운 날들이여/날 선 계시처럼 찾아온/숨은 꽃술이 궁금하다는 생각에/그대를 가까이 보고는/한송이만으로도/이미 가슴이 벅찼다오”
또 그 다음 날엔 추적추적 비가 오기에 피었던 벚꽃이 조급하게 떨어져 버려 성글게 될까 염려가 되어 `꽃길'이란 시를 지었습니다. “살다보니/걱정이 많아진다/아직 남아서 할 일이 있지만/바람 불고 비 내리니/어깨는 움츠려지고/나무들처럼 서 있는/가로등과 신호등/새들처럼 움직이는/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마음은 자꾸 바빠지는데/아득해지는 꽃길이여”
다행히도 벚꽃은 시샘이라도 하는 듯했던 비를 잘 견뎌냈고, 4월 12일에는 이런 시를 지었답니다. “마트에서 붉은 딸기를 고르고, 배꼽 다른 참외를 집고, 보기 드문 산딸기도 얹어 감기 드신 부모님을 찾았네. 팔순 넘은 아버지는 카톡으로 받은 동영상 저장법을 물으셨고, 팔순 가까운 어머니는 겨울을 잘 넘긴 동치미를 나눠주셨네. 부모 품을 떠나 마련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종소리 딸랑거리는 트럭에선 누룽지, 방풍나물, 호박씨와 해바라기씨, 찐빵과 가래떡을 샀네.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네. 식탁에 두툼한 짐을 풀어놓고 보니,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네.” 제목은 `퇴근길'이었지요.
4월 16일에는 “물외춘장재(物外春長在) 유응정자지(惟應靜者知), 봄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니 오직 고요한 사람만이 알 따름이라”는 조선시대 이서구의 시구를 음미하면서, 봄날에 지은 다섯 편의 시와 함께 그저 고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