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으로 오묘하다. 기기묘묘한 산과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망망한 대해, 그리고 사막과 열대우림들. 그런데 이 모든 오묘함이 긴 지구 역사에서 어느 것 하나만 잘못되었어도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대자연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다. 지구가 자전만 하지 않았어도 밤과 낮이 없을 것이고, 공전만 하지 않았어도 계절은 없었을 것이다. 지구 자기(磁氣)만 없었어도 우주 방사선이 그대로 우리 머리를 때렸을 것이니 지구에 생명체가 있기나 했을까? 대기가 없었어도 매일 수많은 운석이, 지금은 복권 당첨되기보다 어렵다는 별똥별에 맞아 죽는 일이 교통사고보다 빈번했을 것이다. 공기가 없었으면 별똥별에 맞아 죽기 전에 숨이 막혀 먼저 죽었겠지만 말이다.
우주 물리학자들은 빅뱅이 일어난 태초에 물질과 반물질의 비율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의 우주는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는 것이 그냥 조금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조금을 말한다. 어마어마한 조금을 만들어낸 것을 미세조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참 놀라운 일이다. 우주가, 지구가,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이 생겼다는 것은 수많은 미세조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빅뱅 당시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상황이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는 아주 다른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만약 중력의 세기, 다시 말하면 중력 상수(중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데 그 비례상수를 중력상수라고 한다. Nm2kg-2)가 약간만 달랐어도 지금의 우주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전기력이 없었다면, 없지는 않더라도 그 상수가 조금만 달랐어도 지구는 생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생명은 지구 초창기 원시대기에 번개가 쳐서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번개가 바로 그때 치지만 않았어도, 번개가 칠 때 암모니아, 메탄, 질소, 수증기 등으로 이루어진 원시대기의 조성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구에는 생명체가 생기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우주가 생긴 것은, 지구가 생긴 것은, 더욱이 지구표면을 온갖 생명체로 뒤덮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어마어마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저절로 생겼겠는가? 그것은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존재했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 그 존재가 바로 신이다.
놀라운 마음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믿음을 과학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문제가 생긴다.
미세조정이라는 말에서 조정이라는 말이, 조정을 하는 어떤 지적인 존재를 묵시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과학에서는 그런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다. 물론 과학자들 마음속에 그런 존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과학자의 마음이지 과학은 아니다.
내가 주사위를 던지면 어떤 숫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던졌을 때는 반드시 어떤 한 숫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것도 빅뱅 때 있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미세조정의 결과다. 내가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고 하자. 던질 때 내 자세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그 돌멩이는 다른 곳에 떨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이 죽을 것이 저 사람이 죽게 되어 버린다. 여기에도 미세조정은 있다. 이것도 신의 의도적 미세조정일까?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이 죽은 것이 신의 뜻일까?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는 것을 누가 말리랴! 하지만 이것은 믿음의 문제지 과학은 아니다. 과학적으로는 신이 아니라 자연현상일 뿐이다. 신을 믿는 과학자도 자기의 과학책에는 이런 현상을 신의 뜻이라고 쓰지 않는다. 믿음을 과학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말자.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도 과학에 끌어들이지는 말자. 신의 존재를 그렇게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싶은가? 이 믿음 없는 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