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탐험가가 열대 우림 아주 깊숙한 곳, 인적이 없는 정말 자연 그대로인 숲 속에 놀랍게도 아주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탐험가는 이 정원이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생각할까?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이 만들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나무나 풀이 저절로 자기 모양을 다듬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예화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실, 자연을 보면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오묘하다. 특히 식물이나 동물을 보면 그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기관이 아주 조화롭게 작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명체가 어떻게 그냥 우연히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창조론자들은 세상을 만든 창조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자들도 여러 부류가 있다. 지층이 노아의 홍수 때 한꺼번에 만들어졌다거나, 방사능의 반감기가 과거에는 달랐다고 하면서, 우주의 나이가 만년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과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좀 더 논리적인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 지적설계론이다. 순진한 창조론자들에 비해 지적설계론자들은 상당히 정교한 논리를 들고 나온다. 순진한 창조론자들에 비해서 매우 교묘하고 지능적인 창조론자들인 셈이다.
지적설계란 무엇인가? 여기서 지적설계론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은 참으로 신기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인체의 구조만 보아도, 위, 창자, 간, 심장, 콩팥, 등 수많은 장기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어느 한 장기만 잘못 작동해도 사람의 생명이 유지될 수 없다. 마치 자동차의 부품 하나가 잘못되어도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듯이 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관계들이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작동해야 한다. 이것을 지적설계론자들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고 말한다.
진화론은 모든 기능이 동시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론으로는 이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말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존재하는가?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서 생길 수 없는 구조가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유기적인 복잡한 구조가 단번에 우연히 생기는 것은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이 아니라 수십억 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는데도 생길 수 없는 구조가 어떻게 존재할까?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구조들이 자연선택을 받지 못해서 폐기처분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아라. 지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수천, 아니 수억 배도 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 진화의 과정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정말 지적설계자가 있었다면 그렇게 낭비적인 설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좁은 지면에 이 논쟁을 제대로 펼쳐보일 수는 없지만, 창조론자들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과학 지상주의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하느님의 존재나 성경의 진실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인 증거가 있어야 믿는다면 그것이 어찌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는 믿지만, 초심자들이 못 믿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들 스스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도 있으며,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지적설계론자들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