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선택설
인간선택설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9.02.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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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다윈의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설이다. 생명체는 무작위적인 변이가 일어나는데 그중에서 자연환경에 살아남기에 적합한 것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과정을 거쳐 생물이 진화한다는 학설이다.

자연선택에서 이 자연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산, 들 바다와 같은 비생물적인 자연을 의미할까, 아니면 생명체들도 포함되는 걸까?

예를 들어서 벌이나 나비의 진화를 말할 때, 벌이나 나비의 진화에 관여하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꽃이 없는 벌이나 나비를 상상할 수 있는가? 벌이나 나비가 없는 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꽃의 진화에 관계되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벌이나 나비의 진화에는 꽃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고, 꽃의 진화에는 벌이나 나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비의 진화에 자연이란 꽃이 포함될 것이고, 꽃의 진화에 자연이란 나비가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생명체는 다른 모든 생명체의 진화에 관여하는 `자연'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자연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선택을 받는 대상인 셈이다.

인간도 그러한 생명의 진화에 관여하는 `자연'일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선택이라고 할 때, 자연에는 모든 생명체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선택에 관여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비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럼에도 인간은 생태계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자연선택에서 인간의 역할은 나비나 꽃의 역할과는 다른 면이 있다. 바로 계획적이라는 것이다. 계획적으로 농업을 하고 계획적으로 목축업을 한다. 인간이 이 지구에 없었다면 쌀이나 보리가 지금처럼 많이 번식할 수 있었을까? 소나 말이 지금처럼 많았을까? 인간 때문에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된 것을 감안한다면 소나 말은 인간에 의해서 멸종되지 않고 그 개체 수를 불려나갔다. 그것이 소나 말에게 좋은 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앞으로 인간은 진화할 것인가? 필자가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학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냥 생각하기에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자연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선택이 되려면 자연스런 생존경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인간의 생존 경쟁은 더 이상 자연과의 싸움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 사이의 싸움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자연에 적응하기 부적합하면 변이를 통해서 자연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이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을 때 인간을 바꾸는 대신에 자연을 바꿀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자연에 맞추어 살 필요가 없다. 자연을 인간에 적합하도록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이 이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끝장이 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자연선택이라는 말에서 자연이라는 말이 어떤 개체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나라는 한 인간에게 자연이란, 이 대자연은 물론 인간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에 의해서 인간도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진화가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만든 환경에 의해서 인간은 영향을 받을 것이고, 그 영향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진화하게 할 것이다.

노래방 기계가 나오고 내비게이션이 나오면서 인간 두뇌가 해야 할 일의 상당한 부분이 불필요해졌다. 복잡한 것을 기억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인간이 무슨 전략을 꾸미고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이 오래간다면 인간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까?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생물 종이 진화되는 것을 인간선택설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만든 것에 의해서 인간이 선택되는 것을 무슨 선택설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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