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여 개념적인 예술표현 양식을 전개한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 표현은 남성 지배구조하에 조성된 사회적 제도권의 권력이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에 대한 대항이다.
1960~1970년대 당시 미국사회에서 남성 우위의 정치하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낳은 결과는 크루거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녀는 자본주의와 철저한 소비중심사회, 그 속에서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제도의 통제 속에 갇혀있는 여성의 모습들을 사진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여 작품화함으로써 사회의 불합리함을 고발한다.
크루거의 작품들에서 병렬된 텍스트와 이미지의 혼성 모방은 그녀가 12년 동안 그래픽디자이너와 사진편집자로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것인데, 여기에는 주로 대중적 명언, 정치문구, 광고 선전 문구와 같은 강력한 풍자적인 글이 주를 이룬다. 여성의 성차별과 남성의 권위주의, 그리고 끊임없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여러 쟁점은 모두 크루거 작품의 소재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는 사회적인 메시지로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의미를 해석해야 하며 사회의 구조와 함께 읽어야 한다.
작품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는 1989년 4월 워싱턴 DC에서 벌어졌던 임신중절 합법화 행진을 위해 제작되어 배포된 포스터로서 출산의 문제에서 여성의 주체적인 권리를 주장한 작품이다. 이는 태아의 생명을 경시하는 의도가 아니라 낙태의 결정권이 여성이 아닌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몇몇 남성에 의한다는 정치적 사실에의 분노였다. 크루거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광고화법인 `You'라는 인칭대명사는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그 대상이 바뀌는데 이 작품에서의 `You'는 여성 일반을 가리킨다. 구어체에 의존한 텍스트는 화자와 청자 간의 대화적 상황을 연출하여 궁극적으로 관객을 능동적인 비판의 주체로 서게 하는 효과가 있다. 크루거는 이 문구를 통해 여성 스스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우 대칭으로 음과 양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요소가 여성의 얼굴을 정확히 이등분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적군과 아군이 전쟁터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표정한 얼굴과 도발적인 눈빛은 “You(여성)는 싸워야해!”라고 말을 건네는듯하다.
언어와 사진이 만났을 때의 강력한 힘을 간파한 크루거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낙태문제 뿐 아니라 여성의 몸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여성의 성문제나 여성의 권리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전통미학의 카테고리로써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예술행위의 근저에는 시대적 상황에 부합한 미적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크루거는 의도적으로 반 미술사적인 의미로서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성과 새로운 철학적 관계에 입각한 하나의 사회·문화적 상황놀이를 한 것이다. 결국 크루거는 페미니스트 미술가로서 사회 내부에 만연한 부계적 권력을 고발하고,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여성의 젠더 정체성을 확립하고자한 것이다.
/미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