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갑론을박…기업들 "모호한 법"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갑론을박…기업들 "모호한 법"
  • 뉴시스 기자
  • 승인 2024.06.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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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
기업측 "이사 배임 소지까지 걸린 일…신중해야"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한 상장사 이익 편취, 불공정 비율로 합병, 복수 상장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 충돌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업 측에서는 모호한 조문 개정이 이사의 경영 판단을 어렵게 할 수 있어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12일 '기업 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국내에선 개인회사와 상장 기업 간에 거래가 발생하고 일반주주의 부가 지배주주 일가로 이전된다는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테슬라, 트위터 등 외국 기업들도 지배주주가 별도로 개인 회사를 갖고 있다"며 "해외에선 자기거래에 이해충돌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워 계열 간 거래를 하지 않지만, 국내에선 자기거래를 통해 상장사 이익을 편취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상장기업이 2, 3세들에게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해 지배력을 키우는 행위, 개인 회사에 상장사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 복수 상장, 상장사 주가를 낮게 유지해 불공정합병 비율을 통해 계열사 간 합병하는 행위 등을 언급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 규제 및 사익편취 방지 제도를 통해 규율해왔으나 한계가 뚜렷하다"며 "주주 간 이해 충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회사법에 이를 규율할 수 있는 일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으로 '주주 이익' 보호하도록 명시해야"



김 교수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거래에 대해 미국 수준의 '완전한 공정'을 요구하는 조문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충실 의무 대상에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를 주주 간 이해충돌 상황으로 확대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쪼개기 상장 행위' 등 자체의 위법성을 묻기보단 향후 두 회사 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잠재적 이해충돌 가능성과 이에 대한 소송 가능성을 이사 측에서 스스로 고려하도록 함으로서 기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밖에 합병, 복수상장 등 주주의 손익이 회사의 손익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이해 충돌 유형에 한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개별적으로 명시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이 경우 최소한 해당 거래 유형에 대해선 법원이 손해배상 판결을 내릴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명시된 거래 유형 이외의 거래에 대한 규율은 불가능하단 단점이 있다.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방식은 조문 도입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현행 회사 이익과 유사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천준범 부회장은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 법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이사에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행동주의 펀드 대표로 참석한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 적용하고,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하는 등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주의 비례적 이해' 모호…이사 행위 기준 되기 어려워"



반드시 상법 개정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업 측은 입장을 달리했다.



패널 토론에 참여한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우리 상법은 2011년 개정되면서 이사나 주배주주가 투자한 회사와 거래할 땐 내용과 절차가 공정하도록 개정됐다"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선 일정 규모 이상 거래 또는 특정인과의 거래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돼있고 주주총회에 보고하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상법은 이 같은 (이해상충) 문제에 대응하고 있지 않은게 아니"라며 "지배주주와의 손익거래, 자본거래 등에 대해 개별적인 보완조치들이 모두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고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도 인수합병(M&A) 선진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그 의미가 모호해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사의 행위 기준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며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에 갔을 때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어떻게 판정할지 문제가 생기고 소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사상 손해배상과만 연결되는게 아니고 형사상 배임죄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 역시 "제도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기업과 주주의 인식이 합치되는 것이 중요하며, 지배구조 개선 방안 마련시 중소기업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는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사의 행위를 보호할 수 있는 경영판단 원칙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우진 교수는 "주주권 강화 방향이 회사의 이익이나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충돌이 없고 선관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엔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을 명문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정 금감원 법무실 국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과 더불어 이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경영 판단 원칙의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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