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연대(連帶)라는 것
대한민국에서 연대(連帶)라는 것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02.0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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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의 연대 얘기만 나오면 새누리당은 극도의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구걸정치니 망국적 야합이니 하며 원색적인 흠집내기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집권여당으로선 야권이 일렬종대로 지방선거에 임한다는 건 가장 두려운 가설이다. 제 아무리 정치중진을 차출한다고 해도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모든 게임은 버거워진다.

연대는 꼭 지방선거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충북도교육감에 출마한다는 보수후보는 무려 10여명을 넘나든다. 진보가 일찌감치 단일후보를 내세운 상태에서 이런 사정이라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후보들의 연대는 피할 수 없다. 충북대 총장선거 역시 10여명에 달하는 후보들로 인해 연일 언론에 오르고 있다. 후보가 넘쳐나는 이유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 총장 체제에 반기를 들겠다는 교수님들이 많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대표 한 명만을 내세워 현직의 프리미엄을 응징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기에 꼭 연대는 아니더라도 여기 또한 후보들의 자체조율은 필연적이다.

특유의 선문답으로 기자들을 감질나게 하는 안철수가 얼마전 아주 명쾌한 발언을 하나 했다. 민생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정치공학적 연대는 절대로 안 한다고 단언한 것이다. 얼핏 새정치를 표방하는 그의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것 같지만 실은 이는 크나큰 오류다. 이런 생각을 계속 가진다면 본인의 향후 정치행보에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될 지도 모른다.

안철수에게 가장 화급한 것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자당 후보를 많이 당선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다음번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 본인이 말하는 새정치를 모색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새정치’는 지금까지 해 왔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공자님 말씀만 설파하는 것으로 끝난다. 국민들 역시 식전행사만 잔뜩 보다가 정작 본 행사는 구경도 못한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꼴이 된다. 결론은 민주당과 안철수당이 연대를 안하면 야권의 6월 지방선거는 필패라는 것이다. 연대의 절실함은 민주당 못지 않게 안철수에게도 해당된다.

어떤 연대이든 그것은 곧바로 정치공학적이 된다. 특정 목표나 취지에 공감해 한 줄로 서는 것 자체가 다분히 정치성을 띠기 때문이다. 무슨 봉사를 위해 뭉치는 행위조차 거기엔 반드시 정치학적 역학관계나 관리기법이 개입된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결국 기성정치, 더 나아가 박근혜식 통치에 대한 어깃장이고 이는 민주당의 볼멘소리와 다를 바 없다. 충주출신 이인영 국회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연대와 통합을 부정하면 새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연대와 통합이 더 진화한 민주주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지난 대선의 연대를 예로 들며 그 약발을 의심한다. 문재인과 안철수, 이정희까지 연대했지만 된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연대 자체라기 보다는 그 연대가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세명이 폼만 잡으면 다 되는 줄 착각했고 안철수는 진정성이 없었다. 안철수가 문재인의 손만 잡았지 눈은 소 닭쳐다보듯 했으니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리가 만무하다. 이정희는 자신의 이해득실만 따졌다.

우리나라에선 ‘연대’라는 말이 진보나 재야 쪽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사실 특정 목적을 전제하는 연대는 이념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에서 종종 빚어지는 보수와 진보의 연대나 연합 등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연대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행복추구를 위한 ‘시민권력’이라는 말은 맞다. 청주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녹색연대(green solidarity)를 이루지 못하고 개발연합(development coalition)에 주저앉았다면 오늘날의 원흥이 방죽은 탄생하지도 않았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곳에 두꺼비와 오리들이 노니는 방죽이 아닌 아파트 숲이나 아스팔트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연대는 이런 것이다.

세기를 넘기면서까지 법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권리를 위한 투쟁’(루돌프 폰 예링 著)의 궁극적 외침도 다름아닌 연대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이것을 얻는 수단은 끊임없는 투쟁이다”라는 말은 곧 우리에게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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