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굴 변호하지
나는 누굴 변호하지
  • 전영순 <문학비평가·수필가>
  • 승인 2014.02.0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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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스크래치
전영순 <문학비평가·수필가>

독일 속담에 ‘힘이 주인인 곳에서는 정의는 하인이다.’는 말이 있다. 원시인에 통용되는 말이 동서를 막론하고 현대인에도 적용되는 것을 보면 세월이 흘러도 힘(권력, 지위, 경제력 등)의 위력은 대단한 모양이다. 국가나 민족, 인종, 신앙, 신분 등이 확립되기 전 인간은 생물학적 본질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연마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윤리적인 면을 생물학적인 본질보다 우위에 뒀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질서의 방안이다. 동물의 세계 먹이사슬에나 쓰일 법한 힘이 요즘 권력과 명예, 재력이란 지휘봉으로 이 사회에 깃대를 꽂으려는 것을 보면 참 한심스럽다.

자연도 인간과 공생할 때 신명 나게 제 빛을 발한다. 인간도 사회 속에서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때 존재적 가치가 크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떠들썩한 세상사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며 굴러간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얼마 전 영화 ‘변호인’을 봤다. 나는 내가 생활하는 반경 거리에서 교류하는 사람들과 매스컴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영화를 보면서 작다고 생각했던 우리나라가 그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 실화를 토대로 허구가 가담한 영화 속의 이야기는 또 다른 나라,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코미디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나는 그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멍하니 ‘변호인’을 봤다. 영화는 나의 젊은 날과 동시대의 이야기지만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별개의 세계였다.

영화에선 대학생인 진우가 행방불명이 되자 국밥집을 하던 어머니가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변호사 송우석을 찾아가 아들을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진우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으로 제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억울함을 지켜보던 송변호사는 사회적 부조리에 진실을 밝히고자 일부 특권층과 투쟁을 시작한다.

한때 폭력혁명가로 불리던 러시아의 네차예프(S. Nechayev)는 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파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혁명이 곧 도덕이고 정의라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철학에서나 어울림 직하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횡포이자 폭력이다.

우리의 역사가 외세에 치여 눈칫밥을 먹은 탓인지 힘 있는 자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저울질한다. 소인배의 눈금에 착한 국민들만 희생당하는 격이다. 영화 ‘변호인’도 일부 특권층의 강압으로 인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까지 욕보이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 한 정치가의 일부를 영화로 방영시켜 정치적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영화와 현실을 객관적인 사고로 판단하리라 본다. IT산업의 대국으로 급부상한 우리나라는 정치면에서는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인권이 보장돼야 한다.

오리엔탈리즘, 미개인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동양에서도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21세기.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지만 사회, 경제, 복지, 문화적인 면에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라 약자에게 강하게 대하면 약자는 굽실거리며 지배자를 존경하지만, 관대하면 약자는 지배자를 밟고 올라선다고 주인공인 나를 충고한다.

동물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인간은 힘(권력, 명예, 재력)이란 무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권력의 힘이 아무리 위대하다하더라도 선량한 국민을 희생시키는 파렴치한 인간은 되지 말아야 한다.

남의 탓만 할 게 아니라 우리 국민 스스로 의식 수준을 높여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미국은 핵폭탄이 있지만, 한국엔 네티즌이 아닌 정의를 위해 굴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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