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영리한 양들의 무리
<39>…영리한 양들의 무리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3.10.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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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프리카 여행기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끝없는 양떼목장과 소목장과 타조농장들을 지날 때. 그 넓은 땅에 대하여 ‘부럽다 부럽다’가 툭툭 튀어 나오는 것은 좁은 땅에 태어난 국민으로서 솔직함이다.

더위와 무료함에 지쳐 깜박 졸았는데, 빽빽하게 하나의 무리를 이루며 붙어있는 양떼를 보며, 뒷자리의 누군가 “저 양들은 덥지도 않나?” 하고 투덜거리듯 말을 한다. 그러자, 아프리카 박이 “더위를 피하려고 저래요”란다.

10년 전 뉴질랜드에 갔을 때, 가이드의 말이 생각난다. ‘양들은 착한 동물의 대명사. 하지만 양들은 결코 착하지 않아서, 자기의 더위나 추위보다 다른 양이 더위나 추위로부터 벗어나는 게 싫어서 부득불 여름의 더위에 붙어 있고, 겨울 추위에 떨어져 있다’고 했다. 참으로 이상하여 귀국하자마자 알아보았다.

결론은 ‘양들은 영리하다’는 것이다. 햇볕의 상당부분은 양털로 반사되고, 지면의 복사열은 양들이 모인 그늘로 인해 줄어들므로 더위를 피하는 영리한 방책으로 햇볕아래 서로 붙어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박이 세세히 설명해 주면 더 좋겠지만, “더위를 피하려고 저래요”라고만 하니, 다들 의아한 표정이다. 반대로 겨울에 흩어져 있는 이유는 ‘흩어져 있으므로 온몸으로 열량을 많이 받을 수 있으므로 그리 한다’ 는 말까지 해 주길 바랬다면, 후후! 내 욕심이다.

암튼 유칼립스나무 그늘에 웅크린 동물들을 보는 것 까지도 덥게 느껴지는 긴 길. 세 시간 쯤 지나 모처럼 차가 힘들어 하며 천천히 고갯길을 오른다. 사방이 온통 돌산이고. 눈에 보이는 평원이나 산이 돌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언뜻 언뜻 바다가 보이더니, 검고 회색뿐인 도시가 나타나며 고갯마루 마지막 휴게소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인 스텔렌 보쉬가 가까워 오는지 써머셋 웨스트라는 도시를 지나고 차가 고갯마루를 넘어서면서 포도 농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삭막한 풍경이 지나고 초록이 짙어진다. 도착한 시간은 4시 반,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 도시는, 도시라는 느낌보단 예쁘고 정갈한 마을. 중세 유럽의 작은 마을을 옮겨 놓은 듯, 아기자기함과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예정보다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들리기로 한, ‘컨트리 펌(Ronnie’s sex shop)’은 들리지 못했다. 아프리카 박의 섬세하지 못한 성격이 드라이버 니콜라이에게 상세히 말을 전해지 못해, 멀리 돌아오느라 정작 들려야 할 곳을 피해 왔다는 것이다.

그나마, 스카이가 니콜라이에게 듣고서 전해줘 알았으니. 에고, ‘아프리카의 독특한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기회가 영영 사라진 것에 대하여’ 아쉬움에 맥이 빠진다.

그런데 일정표에도 분명히 있는 과정을 빼 버린 것에 대하여 왜, 죄송하단 말 한마디 없을까. 서둘러 오느라고, 잊었다던가.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늦어 놓쳤다던가. 솔직하게 전달이 잘못 되었다던가. 무어라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이란 것이 가이드 자신에게는 일상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선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으므로 두고두고 아쉬움을 갖게 하는데. 가이드란 직업은 행동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자부심과 배려심이 부족하다면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과 불만의 추억을 갖게 한다.

자꾸 반복되는 아프리카 박의 실수에 대하여, 싫은 말 건네기 싫어 설까. 묵묵한 일행들의 너그러움에 대하여, 권리를 포기한 비겁함이 느껴진다. 여행 기분을 망칠 수 없어서 나 역시 조금 비겁해 지면서 체념하고 있으니 누구 탓을 하랴.

푸른 줄을 그어 놓은 듯 끝없는 포도 농장이 널린 스텔렌 보쉬. 오후의 청정한 공기함께 이 순간 다시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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