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수입론
빈대수입론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5.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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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엔 본래 빈대가 없었단다. 중국에서 수입해 왔다. 좀도둑이 많아 포도청의 인력을 증원하다보니 백성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야 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갔다. 도둑에게 털리지 않으면 세금으로 다 뜯겨서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그러자 국가의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이 묘안을 냈다.

중국에서 빈대를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빈대를 민가에 보급했더니 아무리 고단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깊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횡포에 잠을 깊게 못자니 도둑은 얼씬도 못했다. 국민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복지를 확대하면 엄청난 재원이 들어간다. 이 재원은 세금이거나 기부금 또는 수익자 부담금으로 충당된다.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복지를 확대하면 세금이 부담스럽다고 하소연이고 복지를 축소하면 사회가 불안해진다고 불만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이 때도 묘안을 짜낸다. 자산조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소득이 아주 낮거나 자산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세금을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

자산조사(소득조사)를 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을 늘려야 한다. 며칠 간격으로 들려오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자살이나 과로사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렇다고 공무원 수를 충분히 늘리면 또 세금이 늘어난다고 불만도 높아갈 것이다. 빈대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 피오트르 황제시대에 이득발안자란 기묘한 직업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짜내어 세금을 더 거두게 하는 직업이다. 잘만하면 상도 타고 출세 길도 열렸다.

농노출신으로 부지사 자리까지 오른 이가 있었다. 독수리 문양의 인지를 고안해 내서 출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쿨바토프란 사람이다. 이 나라는 빈대를 수입하는 대신 국민들이 사용하는 모든 계약서나 중요문서에 모두 정부수입인지를 붙이도록 해서 인지세를 거둬 해결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선진국 중에서 하위권을 맴돈다.

노후소득보장정책으로 노령수당을 일괄하여 지급하기로 했다가 재정의 벽에 부딪쳐서 다시 자산조사방식이나 국민연금과 연동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핏 자산조사 방식은 무척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원하고 재정부담을 줄여 세금을 줄이면 자본이 생산과 소비로 이어져 경기에 선순환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자산조사방식 때문에 엄청난 업무량에 가위가 눌린다. 수급자격을 잃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말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복지 마인드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인지부조화로 인한 고통도 엄청나다. 대다수의 학자와 교과서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선별적 개념이 아직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업무를 줄이는 방법은 인원을 증원하기보다 자산조사방식을 포기하는 쪽이 현명하다. 빈부 구분 없이 양육수당을 똑같이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소득이 적은 사람은 양육수당이 더해져도 세금이 크게 늘지 않는다.

그러나 소득이 높은 사람은 기존의 소득에 양육수당을 더하면 높은 구간의 세율로 소득세를 납부하게 된다. 결국 똑같은 금액을 지급한다 해도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것이다.

자산조사방식의 복잡한 과정에서 엄청난 인력과 절차비용이 소모되고, 자칫 국민들이 부당수급을 하려드는 등 도덕적 타락을 부추길 수도 있다. 세금을 통한 간접지원, 즉 각종 공제제도도 이 참에 대폭 삭제할 필요가 있다. 직접지원방식을 늘려 절차적인 불필요한 노력과 비용을 줄이는 것도 전체적인 공무원의 과로를 줄여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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