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보릿고개
문화예술의 보릿고개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3.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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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문화예술 분야에도 보릿고개가 있다. 계절별로는 새해 1월과 2월이 보릿고개다. 국가적으로는 선거기간이 보릿고개다.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보릿고개는 사회적 추모 분위기가 이어질 때다. 이때는 합리적 기준이 없이 각종 공연이나 행사를 무차별 취소하거나 연기한다. 최근 만난 예술계 인사는 보릿고개에 관한 옛이야기를 들면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고충을 이야기 한다. 지금이 연초와 선거가 맞물린 최대의 보릿고개라 한다.

한 부자가 아들 다섯을 두었다. 부자는 막내 아들까지 결혼시킨 뒤 어느 며느리가 가장 생각이 깊고 똑똑한지 알아보려고 며느리들을 불러 놓고 질문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무슨 고개냐" 이 물음에 첫째부터 넷째 며느리까지는 '새재', '추풍령', '말티고개', '대관령'이라고 높은 고개 이름을 댔다. 막내며느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릿고개는 태산보다 높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들이 가장 이겨내기 힘든 고개이니까요."

문화예술 공연이나 전시 발표회 등은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안정적인 발표무대나 공간을 가진 국공립 단체나 재단법인에 속한 문화예술인들이야 큰 어려움이 없지만 작은 규모의 사설단체나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정부의 보조금 사업이나 기관의 후원이나 협찬이 없으면 무척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나 각종 재단의 공모사업은 연초에 거의 없다. 연초에 공고를 내고 사업을 제안받아 심사하여 선정하면 선정된 사업은 빨라야 3월에나 시행할 수 있다. 그러니 1월이나 2월에는 공연이나 전시 횟수가 현저하게 줄 수밖에 없다. 이 시기는 특히 학생들의 방학기간이라 방과 후 교사나 예술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계약기간이 끝나 수입도 없는 때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때에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중요한 선거가 두 차례나 예정되어 있다.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의 대통령선거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규정은 선거일전 60일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양강좌, 사업설명회, 공청회, 직능단체모임, 체육대회, 경로행사, 민원상담 기타 각종 행사를 개최하거나 후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선거운동의 과열과 혼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거일전 60일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더라도 위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거나 후원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것이다(대법원 2011. 7. 14. 선고 2011도3862 판결).

올해 선거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금지기간이 선거일전 60일부터 선거일까지이므로 제19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해서는 2012. 2. 11~4. 11까지이며, 제18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금지기간은 2012. 10. 20~12. 19이다. 행사를 기획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선거를 깨끗하게 치르려는 공직선거법도 훌륭하다. 사회적으로 경건하게 국가적 애도와 추모를 하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인 면에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1월과 2월에도 시행하는 지원사업을 만들어 보시라. 선거기간에도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는 행사의 종류를 좀 더 찾아내서 금지를 풀어보시라. 국민적 애도기간에도 무조건 모든 행사를 금지시키지 말고 행사에 앞서 추모시간을 갖도록 안내하고 행사를 적절한 형태로 유지하도록 하시라. 국민들의 보릿고개를 바라보는 막내며느리의 지혜를 배워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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