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과 개천용
드라마 브레인과 개천용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1.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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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취재 2팀장)

KBS 의학드라마 '브레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배우 신하균의 열정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탓이 인기의 큰 비결이겠으나, 나는 그가 맡은 인물 이강훈의 캐릭터에 더 빠져 있다.

극중 인물 이강훈은 천하대병원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다. 냉철하고 품위있는 귀족풍의 의사는 이미 출신성분에서부터 그와는 거리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개천에서 난 용'인 셈인데, 지금처럼 1%와 99%로 명확하게 고착화돼 가는 세상에서 더 구미가 당긴다.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출신성분의 차이에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권력을 차지했다는 점은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부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런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 '브레인'의 극중 인물 이강훈은 비열하며, 속물 근성마저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역설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물론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걸 온전하고 공평하게 펼쳐 낼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주는가.

하여 그는 권력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으면서 세상에 당당하게 도전한다. 그 과정에서 이강훈이 발휘하는 권력과 욕망을 향한 도구는 그러나 정도에서 벗어나 있고, 또 편법조차 난무한다.

대학병원 조교수에 임용되기 위해 신경외과 과장의 논문을 대신 써주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무릎도 꿇는 굴욕도 마다하지 않는 처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일단 권력게임에서 밀려나고, 급기야는 무리를 해 가면서 기업총수의 뇌를 성공적으로 수술해 주면서 권토중래하고, 라이벌인 대물림 의사, 귀족성향의 동료보다 먼저 조교수에 오른다.

씁쓸하다. 개천에서 난 용이 편법과 굴종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게다가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제 힘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결국 기업 총수의 도움이라는 힘을 빌려야 한다니.

그리고 정도를 걷지 못하고 편법마저 감수해야만 권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짐이.

그러나 어쩌랴. '브레인'이라는 단어의 뜻이 두뇌라는 본디의 뜻보다는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 곁에서 학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 또는 그런 집단의 뜻으로 더 길들여 진 세상을 살고 있으니.

재담꾼 김제동은 그의 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서 '(자신이)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근데 왜 다들 용꿈만 꿀까. 모든 송사리가 용을 꿈꾸면 개천은 뭐가 되나 송사리로 남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개천을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하지 않나'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들거니와 설사 용이 개천에서 나온다 해도 그 용은 자기가 날 수 있는 근간인 그 개천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아무리 흑룡의 해라고 해도, 용만큼이나 소중한 송사리떼 같은 사람, 사람들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브레인'을 보면서 쓸데 없이 상념이 커져 버렸고, 그 생각 끝에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가 떠오른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에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의학 드라마 '브레인'은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처방전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실력은 있어도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세상에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고 행복해 지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과연 얼마나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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