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못하면 바보다
알고도 못하면 바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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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세상만사
김익교 <전 언론인>
사람은 보이지 않는 정신(心)과 보이는 육신(身)이 서로 공존하는 몸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심신(心身)은 마음과 육체를 뜻한다.

마음이란 존재는 항상 잔잔한 물과 같이 조용히 가라앉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생리적 본능이고 육신은 기(氣)와 혈(血)을 활발하게 순환하게 하려는 것이 생리적 본능이다.

서로 상반된 생리적 존재이지만 정신은 육신에 뿌리를 박고 육신은 정신이 박은 뿌리를 담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생존하려는 것이 인체다. 육신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하고 정신이 옳바르면 육신도 튼튼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몸이 쇳덩이 같이 탄탄해도 정신이 바르지 못하면 힘이나 쓰는 소나 말 또는 맹수나 다름 없고, 정신이 바르고 맑아도 몸이 병들면 생명을 잃게 되니 이 또한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정신과 육신이 조화를 유지하려면 일곱가지 감정(七情 喜, 怒, 憂, 思, 悲. 恐, 驚)이 서로 견제하며 조절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탈도 많고 병도 많아진다.

세상사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얽히고 설키는 이해상관에 따른 감정 조절능력이 예전만 못해서 일수도 있다.

물질이 우선시 되고 경쟁이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외적갈등과 내적갈등이 늘어나는데 반해 마음과 육신이 서로 교감하며 통제할 수 있는 의식이 약화,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일원화돼 조화를 이루는 항상심(恒常心)이 필요한 것이다.

감정의 동물인 인간의 마음은 항상 번거롭고 어지러울수 밖에 없다.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 감정이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한시간, 하루사이에도 몇번씩 파도가 치다가 불길이 타오르고 맑았다 흐렸다 하는 번거로움이 수없이 반복된다.

또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하려는 행동이 나쁜 것을 알면서도 기욕(嗜慾 좋아하고 즐기려는 욕심)에 빠져 양심과 갈등을 하다 보니 어지러워지는게 마음이다.

한번 잘못된 생각이 싹트고 행동으로 이어져 반복되면 돌이키기가 어렵고 선과 악에 무덤덤한 비정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 나만을 위하는 존재가 된다. 이런 마음이 많아지면 세상은 인간미가, 인정이 없는 인심이 각박한 세상이 되고 만다.

좋은 것을 좋다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못하는 세상.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생각해 보자. 일상의 크고 작은 일에서 마주치는 상대에게 내 마음은 빗장을 걸고 상대에게만 마을을 열라고 조르고 윽박지르지는 않았는지 .

성경에 '나를 믿으려는 자는 마음의 문을 열라'는 귀절이 있다. 남에게 마음을 열라 하기전에 내 마음부터 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먼저 열고, 베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이 복(福)이 돼 몇 배로 나한테 돌아온다. 마음 씀씀이가 좋고 긍정적이면 매사가 잘 풀리고 그렇지 못하면 그 반대인 것이 세상의 이치고 순리인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면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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