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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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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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영미 <수필가>
걷고 있는 발길 위로 나뭇잎 하나가 툭 떨어진다. 가을은 아직 산 너머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물기가 남아 있는 푸른 잎이 어찌 서둘러 떨어진 것일까.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본다. 얼마 전 갑자기 돌아가신 지인이 생각난다. 집 근처 야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실족사 했다. 80미터 아래로 굴러 의식 없이 사경을 헤매다가 일주일 만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평소 늘 밝고 명랑하며 병치레 한 적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 그리 바삐 세상을 뜰 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가족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믿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적셨고,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여름에도 잎은 진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스친다.

그리고 얼마 후 건강하던 후배의 아들이 현관에 떨어진 물을 밟고 미끄러졌는데 뇌진탕이 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 앞에 후배는 거의 정신을 놓았다. 이런 소소한 일을 겪고 보니 사는 일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다.

며칠 전 출근하던 딸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다. 놀랄 어미 생각에 제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교통사고 처리를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내게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전했다. 목소리를 듣고 많이는 안 다쳤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었지만 걱정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X-ray를 찍으니 사고의 충격으로 허리뼈가 뒤틀렸다고 당장 입원하라고 한다. 환자복을 입고 누운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중형차였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경차라 더 다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만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감사함에 두 손이 모아지곤 했다.

병원에서 며칠을 딸아이와 함께 보냈다. 그동안 별일 없이 지나간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평범한 일상이 새삼 행복이었음에 비로소 내 자세가 낮아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충전용 건전지 체질인가보다. 이렇게 무슨 일이 생겨야만 무탈한 일상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일복이 많은 나는 늘 해야 할 일이 앞선다고 불평이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부심일 수 있다. 또 멋진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그런 차 한 대 사주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한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 걸어 다닐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가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3주가 넘어 딸아이가 퇴원을 해서 집에서 편한 잠을 잤다.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눈에 익숙하게 들어오는 가구들이며 천장의 벽지와 살갗에 와 닿는 쾌적한 이불의 감촉이 새삼스레 행복하다. 이 시간의 평화가, 숙면을 취하고 난 후 눈을 떴을 때의 만족감이 그렇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행복을 되찾은 기분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익숙함 속에 부딪친 낯섦, 그 낯섦 속에서 발견한 익숙함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바람 불고 날이 더 차가워지면 떨어지는 낙엽들은 늘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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