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지철당간의 의미
용두사지철당간의 의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2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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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명철 <충북도교육청 연구사>
청주 성안길 한복판에는 청주의 자랑이며 상징인 역사적인 문화재가 하나 있다.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이다.

청주의 다른 이름이 바로 주성(舟城)인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큰 돛대를 시내 한가운데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았고, 그 후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청주에 전해온다. 이 철당간이 바로 용두사지철당간이다.

당간은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깃발을 달아두는 긴 깃대를 말하며 이 깃대를 지탱하여 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 많은 사찰이 세워졌고 당간도 많이 건립되었지만 대부분 당간은 사라지고 현재는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당간들이 나무들로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철당간이라는 것에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당간이 주목 받는 또 중요한 이유는 세 번째 철통에 당간을 만들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 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철당간에 명문이 들어간 경우는 용두사지철당간이 유일하며 90여자의 이 명문을 통해 고려 건국 초기인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김예종(金芮宗)이 발원하여 김희일(金希一)이 완성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용두사지철당간이 국보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철당간을 만들게 된 경위와 시기, 그리고 당간 건립을 주도한 당시의 청주 호족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 '학원경 한명식', '학원낭중 손인겸(學院郞中 孫仁謙)'이라는 구절이 있다.

'학원경', '학원낭중' 등의 명칭과 기록의 내용을 볼 때 당시 청주의 호족들이 중앙정부와 독립적으로 학원이라는 독자적인 부서 조직과 직급을 가진 체계적인 교육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주가 1000년 전부터 지방문화와 교육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용두사지철당간은 화강암으로 된 4.2m의 지주에, 63cm 크기의 철로 된 원통 당간 20개가 서로 맞물려서 끼워져 있다.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높이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건립당시에는 약20m 높이의 웅장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철통을 주조하고 조립하는 기술도 놀랍지만 3번째 철통에 돋을새김으로 철통에 명문을 새겨 넣는 첨단 기술적 수준에 주목하면 한국이 자랑하는 직지가 415년 후에 탄생한 것은 오히려 많이 늦었다고 생각된다.

청주는 교육의 도시이며,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간행된 세계 인쇄 문화의 요람이다.

한국사를 넘어선 세계사에 길이 빛날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의 고장인 것이다.

특히 용두사지철당간은 고려시대 청주의 위상과 기술수준 등을 알 수 있으며 청주의 자랑이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직지'가 청주에서 탄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푸른 가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청주의 자랑이며 상징인 철당간을 찾아가 천년의 숨결을 느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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