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첫걸음
등산 첫걸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0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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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산에서의 3가지 금기사항으로 첫째 등산도중 물먹지 말기, 둘째 산에 올라 소리 지르지 말기, 셋째 담배 피우지 말기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등산 시의 필수사항에 대해서도 몇 회에 걸쳐 연재하려 한다. 우리나라의 산들 중에는 설악산, 월악산, 치악산 등 악(岳)자 붙은 산이 몇 있는데 흔히 악 字 붙은 산은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등산하기 힘들다고 한다. 특히 겨울산행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필자도 가까운 월악산 등반을 눈 오는 겨울날 한적이 있다. 덕주사 입구에서부터 차가 오르기도 힘들게 얼음으로 반들반들한 길을 오르면서 힘듦을 예상했다.

한동안 등산을 자주하여 제법 탄력을 받던 때였고 남편은 여러 번 월악산 등반 경험이 있었으니 믿고 가보기로 했다.

비교적 쉬운 코스라고 선택한 것이었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걸고 걸어야만 했기에 조금 오르자마자 벌써 '첫관문증후군'(산을 완주하기까지엔 군데군데 쉼터가 있는데 첫 번째 쉼터가 가장 어렵고 힘들게 느껴져 오를까 말까를 고민하는 힘든 증상이라고 필자가 만든 용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관문을 잘 통과하면 시작이 반이라고 했듯이 그저 오르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큰 산이건 작은 산이건 언제나 산은 역시 산이다. 그만큼 등산 시작단계에선 늘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힘든 등산로를 선택하건 쉬운 코스를 선택하건 산을 타는 사람은 어찌됐든 힘든 등산을 선택한 것이다. 힘듦을 일부러 선택한 것이므로 힘듦과 친해져야 수월하게 산에 오를 수 있다.

첫 관문 증후군이 나타나면 정상에 오를때까지 오를까 말까를 고민하며, 내적 투쟁하느라 등산하는 것 이상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니 그만큼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산보고 힘든 산이라고 타박하는 것이다.

크건 작건 간에 등산은 힘들다는 전제하에 시작하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누구나 힘들게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 맞는 산을 선택했으면 힘듦과 친해지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당부한다. 우선 산에서는 나의 시선을 내 발에서부터 3m 앞까지만 보고 걸어라. 등산의 완전초보자는 1m 앞만 보고 걸어라. 지금-여기, 산에서 내 발만 착실하게 믿고 오르면 된다. 그렇게 가다 보면 내적인 싸움 없이 잘 오를 수 있다.

그런데 내앞을 휙휙 지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저 사람은 힘 안 들고 잘나가는데 왜 나는 못가나' 하는 비교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발을 믿고 따라 올라가기 어렵게 된다. 고개를 들어 100m 위를 보게 되면 '어휴∼ 계단 저긴 더 경사가 심하니 어떻게 오르지' 하는 내적 갈등이 더욱 솟구치게 된다.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위를 보는 순간, 믿었던 내 발이 헛발을 딛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산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매개체로 해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즉 내가 산을 '힘든 산'으로 만든 것이다.

산은 나를 힘들게 하여 지치게 만드는 곳이 아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조금씩 오르다 보면 산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설사 그것을 알게 되었다 한들 그저 3m 앞만 보고 걸어라.

며칠 전 가수 김동률의 뮤직 비디오를 TV에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네팔에서 본 풍광과 흡사한 장면들이 많이 스쳤다. 같이 보던 고교생 아들이 스쳐 지나가는 산들의 배경 사진을 보며 "역시 산은 사람을 겸손되게 만든단 말야"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산을 타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 때문에 겸허한 자세로 산을 타게 되는 것 일게다.

큰 산은 큰 산대로 작은 산은 작은 산대로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등산 온 사람을 대하는 산의 모습은 여전히 웅대하여 수많은 사람을 포용하기에 더없이 산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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