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고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막은 고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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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문학 칼럼
박홍규 <교사>

집은 읽기가 더디다. 쉽게 진도를 나갈 수 없다. 후다닥 읽어 내는 게 능사도 아니다. 긴장감 없이 설렁설렁 건성건성 훑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때때로 눈에 박히는 작품이나 구절이 나타나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게 하고 다른 시선을 용납하지 않은 채 한 동안 골똘하니 몰입하도록 만들어 놓는다.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최승호 시집 '고비', '고비의 고비' 중)

여행 시집이다. 시인은 고비 사막을 다녀온 듯 하고, 그 여행을 소재로 시를 썼다. 그리고 그중 한 편이 나를 붙잡고 있다. 삶의 어느어느 시기마다 적절히 동무가 되거나 혹은 가시가 되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시는 동무이기도 하면서 한편 가시이기도 하다. 쉽지가 않다. '나 혼자'로서는 조금은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 위안을 느낌직도 하겠지만, 삶의 또 한 켠은 '우리'와 무겁게 연결되고 있기에 가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좋은 시절에 시집을 펼쳤다면 아마 다른 작품에 정신이 팔렸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고비사막을 걸으며 몇 마디 시어로 고비 사막은 고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그래서이다. 그래서 몸을 일으키고 몰두하게 된다. 맞다, 사막은 고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이런 비유는 진부할 정도로 흔하다. 그렇다고, 흔하다고 해서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시인의 말대로 사막은 우리 주변에 바로 코앞에, 아니 지금 우리가 디디고 있는 발바닥 아래에 놓여있다. 지겹도록 흔한 일상이라 문득 잊고 있을지라도, 사막이 정말 고비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사막이 고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진술은 들을 때마다 새로운 확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다. 태안의 어민들은 말 그대로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부터 가보지 못한 '없는 길을 넘어야' 한다. 상식과 도리라는 들고 있던 지도는 그러나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일 뿐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도 사막이다. 그들이 건너야 하는 사막의 황폐함을, 사막을 건너는 일의 혹독함을 재삼 분노해야 하는 '지도'의 허술함을, 다시 또 다시 지켜봐야 하는 우리의 가슴은 날벼락을, 맞듯 느닷없이 당사자가 되어 직접 겪어내야 하는 그들의 가슴과 더불어 사막이다. '그들'과 '우리'라고 굳이 경계를 그을 필요도 없다. 갑작스레 딛고 있는 땅이 사막임을 확인하는, 확인해야 하는 현실은 고비의 모래바람보다 고통스럽다. 거대한 자원봉사의 물결이 오아시스 역할은 했을 것이되, 그러나 그것이 본질을 복원하지는 못한다. 더하여 몇 분의 극단적 비극은 우리 모두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아프게 일깨우고 있다.

우리들을 사막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의 정체는 그러나 느닷없는 녀석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류라는 '지도'를, 최고라는 '지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일류'와 '최고'가 그것을 획득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원칙이라는 경고는 당연한 논리라는 듯 귀 뒤로 흘리고, 최고의 대열에 합류하려 올인하며 애를 썼지만, 그 노력의 절반에 반만큼 조차도 도리와 배려를 돌아보고 가꾸는 데에는 인색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진작에 사막 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사막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는 것만큼 우리는 사막을 빠져 나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도는 모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길을 잃은' 우리는 지금 '고비 한 복판'에 놓여 있다. 사막에 놓여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비로소 사막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라고 한다면, 새 지도를 만들 어떤 시작일 수 있다고 한다면, 혹여 억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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