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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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4.05.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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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또각또각 엇박자다. 네 박자인 듯 세 박자인 듯 경쾌한 울림이다. 두 여인의 네발과 세발의 발걸음 소리는 데크로 포장된 길에서 너울거리듯 음을 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음을 타던 세 박자가 이탈한다. 불협화음이 지속되자 두 여인은 너른 의자에 앉아 오후 햇살을 만끽하며 한유한 시간을 즐기며 회상에 젖는다.

돌아보니 하루 종일 두 발을 혹사하면서도 발보다 외모에 더 신경 쓰며 살아왔지 싶다. 온몸에 가장 낮은 곳에서 몸을 지지해 주며 제2의 심장이라는 발. 나를 지탱해 주며 충직하게 소임을 다했는데 발목 골절 이후 네발이 되면서 일상이 바뀌었다. 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편한 발디딤은 절뚝거렸고 일행을 따라다닐 수 없어 외출을 꺼렸다. 어줍은 걸음걸이로 통증을 참아가며 온몸에 힘을 주고 걸어야 했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애써 감췄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이 괴춤에 고이도록 발맞추느라 곤혹스럽고 난감한 생활로 칩거는 자연스럽다. 팔십이 목전인 친척형님은 세발이다. 젊어 고생은 늙어 관절염이라더니 푹푹 쑤시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관절염을 앓았다. 퇴행성 무릎관절염으로 퉁퉁 붓고 기형으로 변형된 다리 정상적인 보행이 어려워 은둔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제아무리 허리를 곧추세워도 구부정하고 엉거주춤한 걸음걸이. 관절염으로 굼뜬 걸음으로 더 이상 몸을 끌고 다닐 수 없어 어렵사리 인공관절수술을 했다. 수술 후 그 어렵다는 재활치료를 감내하면서 구부정했던 허리와 변형된 다리가 곧게 펴졌다.

모두가 역경을 잘 견디어낸 기적이라 했고 거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노년의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 노인복지관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삶의 질이 더없이 향상되었다. 달라진 일상생활로 형님은 백세에 나라님께서 하사하시는 `명아주' 지팡이를 받겠다며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부리며 호언장담한다.

지금도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무병장수지팡이를 나라님께서 하사하고 있으니 백세쯤이면 누구나 청려장을 소원하지 않을까. 명아주는 나무가 아닌 한해살이 풀임에도 불구하고 줄기와 뿌리가 상당히 견고하다. 뿌리 채 뽑아 몇 시간을 삶아 껍질을 벗겨내 인고의 시간을 들여 곧게 말려 가공하면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가 된다. 마치 우리네 삶의 여정과 흡사한 명아주다. 비록 잡초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처럼 명아주는 나무만큼 튼튼한 지팡이를 남긴다. 한낮 한해살이임에도 나라님께서 하사하는 장수지팡이가 된 것은 만드는 이의 노고와 튼실하게 자란 풀과 한마음으로 동했기 때문이랴.

그렇게 지팡이 하나 만들기에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거늘 재활도 않고 잘 걷기를 바라는 나의 오만함에 낯빛이 뜨겁다. 형님과 가족들은 두문불출하고 있는 나를 억지로 밖으로 내몬다. 곡식도 때가 되어야만 여물거늘 통증보다도 재활이 늦어질까 안달복달하며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두려움과 포기는 전염병이다. 과거에 집착하고 안주하는 것은 도전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성향으로 세상에 그냥은 없는 법.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씨가 되어 이루어지듯 긍정은 긍정을 부정은 부정을 낳지 않은가. 얇고 높은 하이힐을 고수했는데 낮은 굽으로 바뀐 외형 의상과 영 어울리지 않은 언발란스 같지만 달랐다. 고뇌를 내려놓으니 그만큼 노련해진 삶이 보인다.

코앞이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활기찬 노년을 두고 액티브 시니어라 한다. 나이가 들어도 나이 탓하지 않고 늙어도 늙지 않게 다가오는 액티브 시니어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며 화음을 이룬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 위에 나지막하게 들리는 봄꽃들의 수런거림이 네발과 세발에 맞춰 협화음이 인다. 두 여인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고요한 사위를 뚫고 뚜렷하게 음을 타며 널리 퍼져나간다. 따스한 봄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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