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인가, 유착인가
공조인가, 유착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1.15 2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주장
권 혁 두 부국장 <보은.옥천.영동>

예상은 했지만 서민과 지방이 바라보는 대통령직인수위의 행보는 불안하다. 이번 대선에서 지방의 다수 유권자들도 '분배는 나중으로 미루고 빵의 크기부터 늘리자'는 성장과 실용위주의 경제공약을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출범도 하기 전에 수도권과 대기업을 배려하는 시책들을 쏟아내는 인수위의 행태는 변방에 당혹감을 준다.

당선인이 당선직후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재벌총수들이었다. 투자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한, 넓게 보면 민생을 챙기기 위한 자리였지만, 그들이 당선자가 면담해야 할 1순위로 꼽힌 것은 새 정권의 지향점이 시사됐다는 점에서 복잡한 뒷끝을 남겼다. 당선자의 호의에 화답이라도 하듯 전경련은 지난 9일 올해 30대 그룹이 지난해보다 19% 늘어난 89조9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600대 국내기업들의 시설투자 증가율은 최근 3년새 내리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 추세를 감안할 때 당선인이 한 차례 면담에서 15억원에 육박하는 투자 증액분을 얻어낸 것은 엄청난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이 당선자를 만나고 난후 올 투자계획을 당초와 달리 조정했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각종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테니 마음 놓고 투자하고 고용하라'고 호언했고, 이후 대기업들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난 투자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박자를 맞췄다. 그런데 전경련의 발표를 앞두고 산업자원부는 공장총량제 폐지 등 수도권 규제완화를 인수위에 건의했다. 이를 계기로 수도권 규제정책이 '기업을 옥죄는 족쇄'로 몰려 인수위의 도마에 올랐지만 이 과정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당선인이 대기업에 제시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수도권의 규제를 풀고 지방분권을 포기함으로써 돈 많은 기업들이 수도권에서 마음껏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였다.

지방 광역단체들이 반발하자 인수위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장기적으로 추진하되 지방분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후퇴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우선 지방경제에 영향이 없는 첨단산업들의 수도권 신설을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공해없고 전망 좋은 알짜배기 업종부터 수도권에 들이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들이 지방에 유치될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내륙을 관통하는 대운하를 건설해 물류혁신을 하겠다면서 유망기업을 수도권에 집중시키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우, 삼성, 현대 등 5대 대형 건설사가 최근 경부대운하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한다. 현대건설을 컨소시엄 주간사로 정하고 조만간 민자사업 제안서 작성에 들어가 차기 정부에 제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운하는 사업타당성과 환경영향 평가등의 절차를 밟아 추진하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입장이다. 민자사업에 대한 민간기업의 발빠른 대응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고시는 물론 사전 절차조차 착수되지 않은 사업을 놓고 재벌들이 끼리끼리 뭉쳐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은 석연찮다. 중견 건설사 한 곳 넣지 않고 초대형 건설사들만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한다. 대기업들이 앞서가는 것은 대운하에 대한 찬반논란을 차단하고, 조속한 추진을 구상중인 차기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도로도 비쳐져 유착의 냄새까지 풍긴다.

인수위의 입맛 맞추기에 신명이 난 산자부는 수도권의 땅값이 매우 비싸졌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도 웬만한 기업은 창업하기 어려워 지방경제가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산자부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수도권의 산업용지는 자금력이 탄탄한 재벌과 대기업들의 독차지가 된다는 얘기다. 산자부는 수도권 규제완화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더 늘릴수 밖에 없다는 반증을 제시한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