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예술교육자
예술가와 예술교육자
  •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 승인 2024.05.08 1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산책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강석범 청주복대중 교감

 

`Tempo 느림, 완성도 부족, 둔함' 어느 대학 모 교수님이 음악대학 지망 예정인 고3 학생의 연주를 듣고 피드백으로 던진 원포인트 레슨 메모지 내용이다. 메모지 내용을 톡으로 받았을 때 두 번 깜짝 놀랐다. 첫째는 너무 성의없이 후려 쓴 글씨고, 두 번째는 `둔함'이라는 마지막 단어다.

`둔하다'는 뜻은 일상생활에서도 참 모진 단어다. 꼭 국어 사전적 의미를 하나씩 들춰내지 않아도, 그 속에 포함된 포괄적 의미는 참 듣고 싶지 않은 소리고 그 둔함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혹시나 해서 국어사전을 찾았다. `깨침이 늦고 재주가 무디다, 감각이나 느낌이 예리하지 못하다, 동작이 느리고 굼뜨다.' 이게 둔하다의 사전적 의미다. 설령 평가자 의견이 이와 비슷하다 하더라도, 현직 교수님이 예술학도인 고3에게 내려준 평가치고는 참 품격 없지 않은가? `둔함'이라는 용어 대신 `좀 더 세밀한 표현이 요구됨' 또는 `악상기호에 충실하면 훨씬 좋은 연주가 기대됨.' 뭐 이쯤 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5분 넘는 학생 연주에 겨우 열 글자 내외 평가를 하면서, 인색해도 너무 인색한 것 아닌가….

피아노를 전공한다고 꼭 조성진, 임윤찬 피아니스트처럼 연주자의 길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아닐지라도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멋진 공연기획자, 평론가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혹 연주에 대한 감각이 조금 무디다 치자. 그 아이가 가진 엄청난 음악적 노력과 자산이 미래 우리에게 어떤 음악적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단순하게 음악적 평가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배려의 문제다. 그 점이 아쉽다. 이런 평가지를 받아든 아이의 처지에서는 그 마음이 정말 어떻겠는가. 휴일 아침에도 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는 고3 피아니스트 제자의 마음을, 나는 차마 헤아리기도 힘들다. 이 당혹감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이쯤에서 나는 예술가와 예술교육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전적 의미로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예술교육자는 `예술가 또는 예술학도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예술가 중에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즉 예술가 겸 예술교육자들이 참 많다. 간혹 자기 경력을 바탕으로 순수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예도 있지만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을 미련 없이 거부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있을까? 능력도 인정받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위치다 보니 나조차도 그런 기회가 왔다면 잡기 위해 무진장 애썼을 거다. 대한민국에서 교수는 가장 되고 싶은 상위 직업군 중의 하나임이 맞다. 특히 예술전공자들은 전공 전업만으로는 생활이 불안정하다 보니 교수직은 많은 예술인의 희망고문 직종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건, 예술대학 교수는 순수 전업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이기 전에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예술가에게도 당연하지만, 특히 선생님은 사람을 존중하는 기본 도리와 교사라는 훌륭한 가치를 늘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벌써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 또한 나의 부족함과 경솔함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상처를 줬을까…. 생각하며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