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주인이고 싶다
정원의 주인이고 싶다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4.04.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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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일주일 전만 해도 방울방울 맺힌 꽃봉오리가 속살을 드러내려면 아직도 먼 줄 알았는데 벌써 떨어진다.

때맞추어 꽃눈이 팔랑거리며 날다 땅으로 내려앉는다.

마당 한가득 쌓인 순백색이 참으로 영롱하다. 시간도 머물다 가는 곳 같다.

나무는 늙어 고목일지라도 꽃잎만은 막 잠에서 깨어난 청순한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흐드러지게 피워 놓고 꽃눈을 뿌리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무는 순간 솔바람이 향기까지 안고 와 함께 놀자고 내 감정을 꽉 잡는다.

이 마당의 주인이고 싶은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지었다는 아담한 문화관이다.

이 문화관 마당은 가옥을 중심으로 세월이 쌓인 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근엄하게 서 있는 노송 옆에 가면 언제고 솔 향기로 반겨준다. 호두나무, 단풍나무, 목련, 저마다 햇빛을 따라가며 자란다.

저들의 파란 이파리는 어찌 보면 햇살을 사모하는 눈빛같이 보인다.

이 정원은 나무의 몸집이 커 바람이 지나는 길목도 있고, 이파리가 햇살을 독차지해 따듯한 햇볕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골라가며 앉는 재미도 더해준다.

멋으로 기교를 부렸더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자연과 풍류를 즐기는 선비댁 마당이라서 주인이고 싶다.

맨땅에 듬성듬성 박아놓은 돌을 골라가며 밟을 때는 재미가 있다. 자투리 공간마다 별스럽지 않은 꽃이 피었다.

멋스럽게 꾸며놓지 않아 욕심을 싹트게 하는 화단이 눈길을 끈다.

또 디자인이 다른 벤치가 곳곳에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벤치를 받쳐주는 바닥도 색다르다. 이렇게 벤치와 바닥을 다르게 꾸민 원인은 품위와 느낌을 살리기 위함일 게다.

그렇다면 벤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다르려나.

커다란 나무 둘레에는 의자를 둥글게 놓았다. 볼 때마다 앉아 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들게 해 앉았다. 모습만큼이나 편안하다.

화려한 꽃이 없는 조각 마당이라 정이 간다. 전지가위로 나무도 다듬고, 봄이면 꽃삽을 들고 그 옛날 어머니처럼 봉선화, 채송화, 백일홍, 맨드라미도 심고 싶다.

그리고 봉선화꽃으로는 손톱에 물도 들이고, 맨드라미꽃은 송편에 박아 꽃 송편도 만들어야지.

미모로 보나 빛깔로 보나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건만 화초라 인정받지 못하고 푸대접받는 민들레도, 흰쌀밥을 공기에 수북이 담은 것 같이 보이는 예쁜 토끼풀도 한 자락 내어주련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잎눈과 꽃눈을 밀어 올리는 모양과 소리도 들어야겠다.

한여름 뙤약볕이 덥다고 눈짓하는 이파리가 보이면 긴 호스로 샤워도 시켜주어야겠다. 가을이 와서 빛깔도 몸집도 다른 낙엽이 뒹굴면 따라다니며 주워야지. 할 일이 많은 정원을 나의 손끝장난으로 보듬어주는 정원의 주인이고 싶다.

내가 만약 정원의 주인이라면 이처럼 넓은 공간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게 다 내어주련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서리에 나의 생활공간을 아주 작게 꾸며야겠다.

그렇게 사노라면 이른 아침에 까치가 방문 나뭇가지에 앉아 깍깍 잠을 깨우겠지.

참새가 짹짹 인사하러 오면 모이로 그들을 불러 마당 한가득 모아놓고 놀아야지.

또 부엉이가 혼자서는 외롭다고 부엉부엉 부르면 운치 있고 멋스러운 벤치에 앉아 밤하늘의 서로 다른 별빛이 모여 함께 놀듯 놀아야지.

문종이 바른 아늑한 방에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왕골자리 깔린 따끈한 이불 속. 상상만으로도 어머니 품 같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정원의 주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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