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사에 그쳐선 안될 첫 만남
수인사에 그쳐선 안될 첫 만남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4.04.21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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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식 회동이 마침내 성사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주 만남을 제안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자주 만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며 국정을 논의하자”고 했고, 이 대표는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의 어려움이 많으니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며 환영했다고 한다.

이날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23%로 급락했다. 부정 평가는 68%로 치솟아 역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거가 끝났는데도 노기를 거두지 않는 얼음장 민심에 대통령이 버티지 못한 모양새가 됐지만 여야 협치의 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여야 영수의 첫 만남이 얼굴이나 익히는 수인사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정을 이끌 두 리더가 차담이나 나눠도 될 한가한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두사람 모두 통화에서 국정과 민생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연금·노동·교육 개혁, 최악의 한중·남북 관계 등 촌각을 다퉈야 할 과제들이 잔뜩 쌓여 있다. 무엇보다 화급한 숙제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의료 공백의 해결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두 달을 넘겼다. 중환자의 수술 지연과 의사와 병상을 찾아 방황하는 뺑뺑이 행렬이 늘며 환자와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정부와 의사 집단의 대치는 요지부동이다. 당장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된다. 교수 비상대책위는 “적절한 정부 조치가 없으면 예정대로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순차적으로 사직을 실행하며 정부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노선을 지켜온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날 경우 벌어질 일은 `불문가지'이다.

환자와 병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학이 내년도 모집요강을 짜려면 다음달 중순까지는 의대 정원을 확정해야 한다. 교착 상태가 더 길어지면 입시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다음달까지 이어지면 집단 유급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유급생과 신입생이 한 교실에서 북새통을 이뤄 교육이 파행을 빚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대표는 총선 직후 정부에 `보건의료계 공론화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여야와 정부, 의료계, 시민단체가 모여 해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이다. 대통령도 앞서 `사회적 협의체'를 제안했던 만큼 당장 이번 회동에서 논의를 거쳐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마침 2000명 증원을 고집해온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증원이 결정된 32개 대학에 일정 규모의 자율적 재조정을 허용했다. 증원 규모가 정부 계획의 절반인 1000명까지로 줄어들 수도 있게 됐지만 `원점 재검토'를 고수하는 의료계는 꿈쩍도 않는다. 정부가 협상시기를 놓침으로써 주도권을 빼앗긴 형국이 됐다.

이 대표가 할 일은 정부의 양보를 지렛대 삼아 의사들이 병원으로 복귀하고 협의체에 참여해 국민이 공감할 의견을 개진토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의 `1년 유예'나 의사단체의 `원점 재검토' 주장은 포기하자는 억지이자, 의료대란에도 불구 의대 증원에 뜻을 모아온 국민에게 백기를 들라고 강요하는 무례나 다름없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비명을 배제한 독선적 공천을 강행하는 등 여러 논란에도 불구,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의 조타수가 됐다. 민심은 대통령의 불통에 더 큰 책임을 물었다. 이번 영수회담은 그 심판의 산물이다. 이 대표는 야당 대표로서의 지위를 온전히 확보토록 해준 유권자의 의중을 곱씹어야 한다. 그간의 냉대를 되갚음하라고 기회를 준게 아니다. 대통령과 대등한 관계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해 국정 성과를 일궈내고 공동 책임을 지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 국민은 그 첫 시험대로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는 의료 분쟁을 주목하며 그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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