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로 살기
당나귀로 살기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4.01.0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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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오랜만에 집 앞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독한 감기로 꼼짝없이 갇혀 지내다 나선 나들이라 바깥공기가 퍽이나 상쾌하게 느껴졌다. 키 큰 상수리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언덕을 올라 놀이터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그네와 벤치에 나눠앉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네 명의 아이들이 툭툭 치기도 하고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면서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존재자체만으로도 싱그러운 아이들 옆을 지나다가 나는 그만 마음이 언짢아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이 차마 옮기기도 어려운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욕설이 난무하는 아이들의 대화가 너무나 불편해서 나는 피하듯 걸음을 빨리했다.

이제 여덟 살이 되는 손녀딸이 처음 영어학원에 다녀온 날, 딸은 걱정 담긴 카톡을 보내왔다. 손녀딸이 가지고 있던 좋은 학용품을 같은 학원에 다니는 두 살 위 언니가 거래라는 명목아래 값싼 지우개와 바꿔갔다는 것이다. 겁 많고 순진한 손녀딸은 언니가 그렇게 하자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 학교폭력이 제일 걱정 된다던 딸의 걱정은 한층 심해졌다. 순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세상은 다소 무서운 곳이다. 어리숙하게 굴다가는 약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기가 십상이다. 센 척이라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공원의 아이들이 거친 욕설을 앞세운 이유 또한 약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미가 가시 옷을 입듯 말랑말랑한 자신의 본 모습을 거친 욕설로 위장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라는 동화를 본 적이 있다. 순한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며 산다고 의기소침해있던 당나귀가 우연히 숲에 버려진 사자의 가죽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걸친 모습을 호수에 비춰본 당나귀는 뛸 듯이 기뻤다. 호수에 비친 모습은 허약한 당나귀가 아닌 위풍당당한 사자였기 때문이다. 사자 가죽을 걸친 당나귀가 숲에 나타나자 동물들은 가까이 와보기도 전에 줄행랑 먼저 쳤다. 도망치는 동물들을 보며 당나귀는 희열의 울음을 내뿜었다. 약한 당나귀로 산 세월의 설움과 사자로 거듭난 기쁨을 담은 울음이었다. 그런데 어찌할꼬! 그 울음은 온 산을 호령하는 사자울음이 아니라 히이힝 힝힝~~ 허약한 당나귀의 울음소리였으니…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우가 숲속 동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당나귀의 꿈같은 시간은 끝이 났다.

동화 속 당나귀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주는 점수가 너무 짰던 것이다. 사자만큼 힘이 세지 못한 거 빼고는 당나귀도 그 자체로 매력 있는 동물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다리가 튼튼해! 내 귀는 길고 멋져! 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나를 무서워하는 동물은 없지만 나를 싫어하는 동물도 없어! 당나귀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여겼더라면 사자 가죽을 쓰고 당나귀 울음을 우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당나귀로 사는 것이 버거운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날들이 수없이 있었다. 잘 난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들 앞에 기죽기 싫어서 괜한 허영을 부린 날도 있었다. 그 허영의 탈을 벗고 나면 더 초라해진 나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어차피 나는 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당나귀인 나를 한껏 치켜세울 수밖에….

너는 멋져. 훌륭해. 잘 할 수 있어. 이만하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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