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가 집을 샀다. 더구나 대출도 받지 않고 30평이나 되는 아파트를 샀다. 비록 십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런대로 살만한 아파트였다. 사람들은 적지 않은 눈으로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젊은 사람이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집을 샀다는 건 때에 따라 누구에게 있어서는 버겁고 어려운 일 일수도 있었다. 두세가 아파트를 산 것이 지금과 다르다고 하지만 십여년 전 그때도 매한가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승은 그런 시선들과는 무관하게 짐작이 가는 듯 엷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가 이렇게 일찍 집을 산 것이 조금은 알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은 그가 대학교 교직원으로 취직한지 5년 만에 집을 마련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집을 어찌 샀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렇다고 어떤 뾰족한 수와 무슨 특별한 비결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지냈다. 누구만큼 편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 업무를 도우면서 의식주마저 최소화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영승이 크게 놀라지 않았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집안 가족관계의 내력에 관심이 갔다. 그는 대학교를 외가집에서 다녔다. 외조부모 두 분은 고물을 주워다 팔면서 살았음에도 절대 가난하지 않게 살았으며 그렇게 번 돈은 모두 저축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의 부모 또한 늘 모자란 듯 살아도 불평 없이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 역시 절약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그가 집을 산 것이 대견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스스로 꿋꿋하게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것이 칭찬이라면 칭찬이었다. 그러고 보니 웃자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름 앞에 “구”자만 붙이면 영락없는 구두쇠였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가 왜 서둘러 집을 사려고 했는지 묘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일단 그 얘기는 뒤로하고 집을 샀다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사실이었다. 영승도 알만한 아파트였다. 그런데 그는 입주를 뒤로 미뤘다. 아직 혼자 살아가기엔 그에게는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그 보다 궁금증은 그가 구두쇠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이유는 사람들에게 구두쇠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자칫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여 질 수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돈을 쓰지 않아 인색한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비난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부자가 되기 위한 구두쇠가 아니라 나눔의 숨은 배려가 깃든 구두쇠가 된다면 어떨까하는 그의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왔다. 머지않아 입주할 날이 다가온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집은 필요하지만 집을 소유하는데 있어서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집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평생 집을 사기위해 온갖 노력을 쏟으며 살고 누구는 집을 단순히 삶이 거쳐 가는 공간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 언제부터인가 집을 보금자리의 개념이 아니라 부의 축적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로인해 집은 투기 조장과 부의 경쟁 대열에 뛰어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집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