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농사면 농사, 장사면 장사, 회사원이면 회사원, 공무원이면 공무원으로 일생 그 직업과 직장에서 종사할 수 있었다. 현대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보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고, 예측이 불가능하게 급변하는 불확실성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절대 권력의 이미지가 쇠퇴하고, 정부의 신뢰가 추락하며, 전문가의 권위조차 실추해 누구나 국민의 알권리에 의해 절대 권위에 도전한다.
이 시대에 가장 금기하면서 불행을 자초하는 이론은, 흑백 논리와 경직성, 획일성, 완벽성이다.
세계는 평평하다. 국내의 유명한 브랜드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지 못하면 곧 밀리고 만다.
각국의 문화와 문화는 서로 교류하고, 종교와 종교도 서로 인정하고 교류·보완하며 인류의 질적 삶에 기여해야 한다. 만약 한 종교만이 세계를 구원하고 인류에 기여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외치면 세상은 잠시도 평화로울 수 없으며, 큰 고통과 함께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래스타인 분쟁, 이라크 석유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표면적인 명분은 불확실하고 내부적인 요인은 다분히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책임져야할 종교에 기인하는 것이 비중이 크다.
아프가니스탄에 한국 모 교회가 자원봉사단으로 파견한 목숨을 건 선교활동도 단지 자원봉사 차원에만 머문다면 누가 고마워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 배경에는 타문화와 종교를 배격하는 선교활동이라는 모순이 있다면 누가 또한 반가워 하겠나.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해외에 파견한 선교활동은 미국에 이어 전세계 2위로 176개국에 파견됐다니, 인구비례로 따지면 명실공히 선교 제 1위국인 셈이다.
오늘날은 작은 변화로 기존 질서를 완전 재편성이 가능한 시대며, 분권화, 다양화, 탈권위화, 자율·개방화 시대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지와 감성의 시대이며, 여성 우위의 시대이기도 하다.
선진국일수록 인간의 행복지수는 낮고 후진국일수록 행복지수는 높다는 보고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 많은 볼거리, 먹을거리, 듣는 것 등이 인간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피곤해 하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절대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에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요구하는 사항이 많고, 불만이 많고 기득권에 대한 도전과 방어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갈등이 첨예화하며 정신질환자도 부쩍 늘고 있다. 못 먹고 헐벗던 과거보다 물질적 삶은 풍요로우나 현대가 정신적으로는 확실히 더 불행하다.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는 우린 아무것도 대비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인재의 양성과 우리 스스로 인재가 돼야 한다. 오늘날에 바람직한 인재란 그 분야에 전문적 능력도 어느정도 갖춰야겠지만, 보다 강조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다.
세계적 기업인 G.E(General Electric)가 고심한 인재도 지적 능력보다 도덕성에 무게를 더 실었다고 들었다. 왜냐하면 지적능력이 뛰어나나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 사회에 불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람이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그 기저(基底)에는 도덕성에 의한 행복추구권이라 단정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인재가 갖춰야 할 사항은 창의성과 유연성에 의한 개방과 변화지향성이다. 변화를 수용하고 변화를 사랑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이 불확실성 시대에도 굳건히 잘 견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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