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흘리지 않아야 할 것은 눈물뿐이 아니다.' `한발 더 앞으로'를 써놔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소변기 중앙에 날아갈 듯한 파리 한 마리를 그려놓자 상황이 변했습니다. 용무를 보던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파리를 정조준했고, 남자 화장실은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단지 `파리 그림 그려 넣기'란 부드러운 개입 하나만으로 남자들의 소변보는 행동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일종의 넛지 디자인 최고 사례 중 하나입니다.
원래 `넛지(Nudge)'는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영어단어입니다. 경제학적 의미로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함으로, 강요보다는 부드러운 개입인 `넛지'를 통해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 동편 계단 1, 2층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계단입니다. 구석진 곳이라 컴컴하기도 하고, 앞뒤로 막힌 구조에 창문보다는 계단 벽면이 훨씬 크게 차지해 자칫 삭막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청결과 꽤 거리가 멀어 학생들이 낙서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가끔은 침을 뱉은 흔적도 보입니다. 학교에서 A4 용지에 아무리 모범답안의 경고문을 붙여놔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렇게 변하면, 새롭게 출력해 붙이는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뿐입니다. 2년 동안 고민 끝에 나는 이곳에 아름다운 대형 벽화를 그려 넣기로 작정했습니다. 바로 넛지의 효과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1층 미술실과 계단을 시작으로 2층은 음악실인데, 바로 이곳이 최악의 공간입니다. 미술실 출입구부터 시작해 2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에 아름다운 추상 형태의 이미지를 아주 크게 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큰 이미지를 그려본 건 처음입니다. 2층 계단 시작부터는 벽면에 대형 오케스트라단 연주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부터 시작한 그림은 이번 여름방학 기간을 포함해 8월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첼로 협연의 대형 오케스트라 그림인데 여름방학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그렸지만 아직 80% 정도밖에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계단을 끼고 있는 벽면이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는 물감칠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좁은 계단에 의자를 놓고 올라서면 가끔 몸이 휘청거려 아찔하기도 합니다. 지저분한 벽면이 아름다운 추상작품과 웅장한 대형 오케스트라 연주 그림으로 변한 모습을 통해, 학생들이 일상에서 놓친 잃어버린 꿈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면 최소한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낙서나 침 뱉을 생각을 빼앗고 “얘들아, 여기 좀 봐~”라는 순간의 아름다운 넛지 개입을 상상하며, 나는 다시 붓을 듭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곳에 설마 낙서를 하겠어? 이렇게 멋진 미술관 바닥에 설마 침을 뱉기야 하겠어?'라는 확신에 찬 손길로 마무리 색칠을 합니다. 얘들아. 정말 멋지지 않니? 꿈을 꾸는 것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