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이다. 농장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자주 다녔는데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는 통 낚시를 가지 못했다. 새들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땅콩이 제법 자랐고 냉해를 입었던 고추도 깨어나 가지가 부러지게 주렁주렁 열렸다. 풀 뽑아주는 일과 농약 치는 일만 틈틈이 해주면 된다. 제일 늦게 심는다는 서리태와 들깨 모종 까지 정식 시켰으니 올 농사일을 반은 끝낸 셈이나 다름없다.
앵천보로 갔다. 자주 다니던 곳으로 제법 큰 씨알의 붕어가 자주 낚이는 곳으로 오래된 낚시터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으로 둑을 높이 쌓고 물길을 똑바로 잡기 전에는 구불구불하고 웅덩이가 있어 고기가 엄청 많던 곳인데 지금은 제방을 둑을 곧고 높게 구축하고 보까지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막았고, 수문만 열면 물이 쫙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봄에는 논일을 하라고 물을 가두어 둔다. 그렇게 모내기 전까지는 봇물을 대 주지만 장마철이 다가오면 수문을 활짝 열어 큰물이 정체 없이 빠지도록 해 놓았다. 요즘은 장마철이다. 물고기는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오는 기질이 있다. 장마가 졌으니 큰 물고기가 올라왔을 것이다 싶어 출조한 것이다.
그런데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낚시꾼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보를 모두 터놓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래도 원체 유명한 곳인데 한 사람도 없었다. 요즘 코로나로 거리두기 때문에 갈 데는 없고 혼자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낚시가 인기라는 소문이 무색하다. 낚시채비를 마치고 미끼를 꿰는데 낯선 한 분이 지나가다가 `꾼은 아니시군요.' 한다. 낚싯대 한 대를 펴고 있으니 전문 낚시꾼이 아니란 걸 알아본 것이다. 그는 또 근동에 사는 사람으로 며칠 전 장마로 이곳 하천이 범람해 수박 하우스가 침수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요즘 국지성 호우로 남부 지역의 비 피해가 크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우리지역에 내린 비의 양으로는 큰 피해를 입을 정도의 수해가 나지는 않을 것인데 의아했다. 40mm가량의 비가 내렸는데도 수박 하우스 7동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단다. 밤새 불어난 인근 하천이 수로를 범람해 하우스를 덮쳤고 잔뜩 물을 먹은 수박은 하루 이틀이면 전부 썩어 출하도 할 수 없었다. 또 2차 수확을 위해 며칠 전 새로 정식을 한 이 하우스도 이렇게 미처 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였단다. 그래서 이를 전해들은 낚시꾼들이 차마 낚싯대를 펴지 못했던 것이리라.
음성 소이면과 경계를 둔 앵천보의 행정구역은 괴산군 불정면이다. 장마 전 미리 수문을 열어놔 하천 바닥이 보이는 상류의 음성지역 다른 보와 달리 괴산 앵천보 상류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단다. 수박 농민이 급한 대로 직접 관리실을 열어 수문을 열려고 했지만 작동하질 않았으니 고장이 났었던 것이다. 음성과 괴산의 경계에 있는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할까.
내가 농사를 짓는 곳도 음성읍과 원남면의 경계에 있다. 합수머리라고도 하는데 어릴 적 여름철엔 이곳에 와서 멱을 감고 놀았다. 서로 깊고 넓은 좋은 장소를 차지하려고 음성 아이들과 원남 아이들이 종종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추억어린 곳이다. 말 그대로 여기엔 멱바위란 곳도 있다. 얼마나 멱을 감으며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기에 멱바위이었을까를 상상해 본다.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그늘 아래 있는 멱바위.
음성읍과 원남면 사이의 경계에 있는 하천. 이곳은 몇 년째 소하천 정비가 되지 않는다. 하천둑방에도 여기만 포장이 되어 있지 않다. 조금만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잘 정비되어 있건만 왜 유독 이 경계만 돌아나고 묵혀지는지.
앵천보에서의 오늘 낚시는 글렀다. 서둘러 낚싯대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