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칠십 년을 사는 것은 옛날부터도 드물다(까)고 읊은 두보(杜甫)의 말이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요즘 사람들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 요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름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은퇴 후의 삶을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정종(鄭種)은 일찌감치 은퇴 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파하였다.
인생 후반전(退休吾老齋)
世間從富不從貧(세간종부불종빈) 세상 사람들 부귀는 좇고 가난은 좇지 않네
藏踪幽谷耳聾人(장종유곡이롱인) 깊은 골짝에 발자국 숨기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네
猶有乾坤無厚薄(유유건곤무후박) 하늘과 땅은 있어도, 후함과 박함은 없으니
數椽茅屋亦靑春(수연모옥역청춘) 서까래 몇 가닥 띠 집 삶도 또한 푸른 봄이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한참 활동하는 시기에는 부와 명예에 몰두하며 살기 쉽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거나, 현업에서 은퇴할 무렵이 되면, 부와 명예라는 것이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시인도 왕성하게 벼슬살이를 할 때는 부와 명예를 좇는 전형적인 세속인의 삶을 살았었다. 그러다가 어떤 연유에서든, 관직을 그만두고 나서는 부와 명예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서 소박하지만 속박받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전의 삶과는 전혀 같지 않은 인생후반전을 모색한 것이다. 부유함을 좇고 가난함을 좇지 않는 것이 세속적인 삶의 모습이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니다. 시인은 세간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오면서 남는 발자국마저 숨길 정도로 철저히 세상과 자신을 차단한다. 그래서 온 곳이 깊은 골짜기인데, 그곳에서 시인은 세속의 소리를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된다. 부유함을 좇을 때 주고받는 번잡한 말들이 전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시인이 인생후반전을 의탁한 골짜기에도 하늘과 땅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후함과 박함을 가르는 법이 없다. 부유함을 좇지 않아도 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공간인 것이다. 시인은 서래 몇 가닥 얹고 띠 풀을 엮어 만든 소박한 집에서 이전의 으리으리했던 저택에서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으니 또 한 번 청춘이 찾아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백세 시대를 살면서 은퇴 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 전반전이 부와 명예를 좇기만 하던 불나방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인생 후반전은 부와 명예를 좇는 부질없음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결코 돈과 자리가 아니다. 소중한 것은 삶 자체이고 삶은 곧 구속 받지 않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