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연가4
탁구 연가4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9.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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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공을 주고받지만/ 실은 내 꿈과 네 꿈을/ 서로 주고받는 거야/ 팔십팔 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꿈도/ 그 중 하나지/ 상대가 없는 자/ 상대할 수 없는 이는/ 처량하기 그지없어/ 나이가 달라도/ 남녀가 유별해도/ 맞붙으면 동반자야/ 부자든 빈자든/ 잘났든 못났든/ 함께하면 파트너지/ 상대가 있다는 건/곧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왕 만났으니/ 즐겁게 신나게/ 사는 거야/ 한세월 사노라면/ 너와 나의 꿈도/ 저리 곱게 익을 거다'

`탁구를 치며 7'입니다. 탁구란 공만 주고받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이심전심으로 마음도 주고받고, 생각도 주고받고, 사랑도 주고받고, 꿈도 주고받으니까요.

`그대여 우리 적어도 팔십팔 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옹골찬 꿈도 있거니와 그런 마음으로 꾸준히 즐탁하다 보면 보약을 먹지 않고도 그렇게 되니 참으로 좋은 운동이지요.

그래요. 건강증진과 치매예방에도 유효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운동이 바로 탁구랍니다. 탁구장에 가면 노익장을 과시하는 80대 즐탁인들을 쉽사리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잊은 오빠 언니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어요. 함께 즐탁 할 절친의 유무와 파트너를 유인 할 친화력의 유무입니다. 치고 싶어도 함께 할 절친이 없거나 상대해 주는 이가 없으면 즐탁 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절친이든 일회성 파트너든 함께 함에 감사하고 늘 사랑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탁구는 너 죽고 나 살자는 뺄셈운동이 아니라 너로 인해 나도 살고 나로 인해 너도 사는 덧셈운동의 표상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잘났든 못났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힘이 세든 약하든 맞붙으면 모두 탁구로 하나 되는 동반자가 됩니다. 다름이 있다면 실력의 고저와 매너의 호불이 있을 뿐.

하여 치고 싶은데 함께 할 상대가 없거나 상대할 수 없는 이는 처량합니다. 어떻게 만났든 이왕지사 만났으니 척지지 말고 사이좋게 신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세상 살다 보면 너의 꿈도 나의 꿈도 저리 곱게 익을 테니.

`후려치는 게/ 능사는 아냐/ 바둑의 사활처럼/ 맥점을 찾아야 해/ 때론 짧고 부드럽게/ 때론 깊고 강하게/ 상대의 허점과 빈틈을/ 공략하는 거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올라갈수록/ 절묘한 묘수들/ 담금질 없는 명검이/ 강호에 없듯이/ 내공 없는 고수가/ 어디 있으랴/ 투혼 없는 승리가/ 또 어디 있으랴'

`탁구를 치며 8'입니다. 후려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타이밍을 놓치거나 오버해 되레 실점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이니까요. 바둑의 사활처럼 맥점을 찾아서 짧고 부드럽게 치기도 하고, 깊고 강하게 스매싱도 해야 합니다.

세상사 욕심이 화를 낳듯이 탁구 역시 과욕이 화를 낳습니다. 이를 앙심 물고 후려친다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의도한 데로 공이 가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듯 탁구는 결코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연약한 여자에게 힘센 남자들이 맥없이 지기도 하는 지혜와 지략을 요하는 고난도 운동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강호에는 절묘한 묘수를 구사하는 고수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담금질 없는 명검이 강호에 없듯이 내공 없고 투혼 없는 고수도 강호에 없습니다.

하여 내공 있는 탁구, 투혼 있는 탁구가 아름답고 보는 이들을 경탄케 합니다. 깊은 내공과 불굴의 투혼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이를 존경하고 흠모하듯이. 오늘도 탁구는 제게 이릅니다. 남은 생 탁구공처럼 둥글게 살라고, 즐탁하듯 웃음을 주고받으며 살라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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