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자니 석달째 지속되고 있는 불매운동 `민심 역행'
세종시의회·충남도의회 의결 보류 … 道 상황 예의주시
충북도가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공포를 두고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공포하자니 상위법 저촉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고, 공포를 안 하자니 민심에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져 비난받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지난 2일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공공구매를 제한하는 내용의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조례 적용을 받는 기관은 충북도 본청과 직속기관, 사업소, 출장소, 충북도의회 사무처, 도 산하 출자·출연기관이다.
도의회에서 의결된 조례는 20일 이내에 충북도지사가 공포해야 한다. 오는 23일이 공포기한이지만, 도는 아직 공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조례를 공포하기엔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선 조례대로라면 전범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그 범위가 너무 넓다. 이 때문에 공공구매를 제한해야 할 제품 품목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조례에는 `전범기업'을 대일항쟁기 당시 일본기업이며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 동원해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를 준 기업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른 자본으로 설립됐거나 주식을 보유한 기업, 이를 흡수 합병한 기업도 포함했다. 규정 자체가 매우 모호한 상황이다.
전범기업과 관련해선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99개 기업이 전부다. 이 중 현존 기업은 284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조례가 시행되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될 수 있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공공구매 제한을 조례로 명문화하면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
조례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에 저촉될 가능성도 있다.
법률 제6조(계약의 원칙)를 보면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정부조달 협정 등에 가입한 국가에서 생산된 물품이나 용역 등 국제 입찰에도 해당한다.
충북이 이 조례안을 처음 가결하고 공포하는 지방자치단체인 점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현재 관련 조례안을 가결한 시·도의회는 충북을 비롯해 서울과 부산, 강원 등 4곳이다.
서울시는 조례 공포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와 강원도는 다른 시·도의 움직임을 살피는 분위기다.
반면 세종시의회와 충남도의회는 조례안 의결을 보류했다.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조례안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기되면서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 사이에선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로 대표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석 달째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수그러들 것이라던 불매운동은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생활화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조례를 검토한 결과 WTO 협정 위배 등의 문제가 있어 공포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며 “이 조례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불매운동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명문화해 추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석재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