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나 상담에서는 마음의 상처,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꺼내놓고 치유 받는 과정이 포함된다. 이런 경우 대개는 가족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주류를 이룬다. 가슴 아픈 사연도 많지만 때로는 상처를 준 부모가 듣는다면 억울하고 서운해 할 사연도 많이 나온다. 어떤 내담자는 어린 시절 장난감이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사주지 않아서 깊은 상처를 받았노라고 펑펑 우는 일도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상처(물리·심리정서적)도 주면 안 된다. 아이들과 활동하다가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가 상처받았노라고 하면 교사는 화들짝 놀라 전전긍긍하며 아이 부모에게 설명하고 또는 사과하고 때론 처벌을 받는다.
애초 심리학은 인간의 병리적인 측면 즉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달했으므로 어린 시절의 상처·상실·학대·강박·중독 등을 주로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약한 존재라 상처를 주면 안 되고 상처받으면 치료해야 하고 치료받지 않으면 병리적인 현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간은 고통을 견디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역설적인 존재로 보고,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 연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정서적 물리적 학대, 성적폭력 등은 분명 심각한 상처이며 있어서는 안 되고 치료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통 가정에서 살아오면서 겪는 정도의 상처라면 그것은 인생의 과정에서 필요한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 아들러(Adler)는 낮은 자존감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들의 강점과 재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분투하게 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성장하는 동안 필요한 좌절을 겪지 않는다면 조금만 힘든 일을 만나도 포기하고 머뭇거리게 되며 위기상황이 되면 헤쳐나갈 생각보다 포기할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처가 역설적으로 긴 인생길에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긍정 심리학의 전제이다.
사려 깊은 부모는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아이들 몰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싸운다. 그런데 연극이 아니고서야 부부가 싸우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상담전문가인 이병준 박사는 만약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을 했다면, 그 후 부부가 서로 화해하고 사과하는 모습도 아이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한다. 아이는 부부라도 의견이 다르면 저렇게 싸우는구나. 그리고 저렇게 화해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체득할 수 있다. 부모의 부부싸움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상처가 아닐 수 있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이르는 말로 어린 시절 가족관계가 자존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감은 높여 줘야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금 아이들의 자존감은 양적 과잉현상을 보이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부모는 경제활동에만 전념해 아이들의 심리적 안녕에 대해서 무감각했지만, 지금은 가정의 시작과 끝이 아이 한 명 또는 두 명에게 집중되어 있어 대부분 아이는 넘치는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란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생이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가 되기보다 자존감 과잉으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높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주변인에게 공격적이고 지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 가정과 학교는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의 질적(質的)인 측면을 고민해볼 때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의 양을 조절해야 하는 데도 과잉 공급해서 심리적 당뇨병에 걸리게 만들 수 있다.
아름다운 삶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자존감을 무작정 높이는 것보다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