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슴 절절한 단어가 있다.
아침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며 그런 생각에 사무쳤다. `조각보'라는 단어가 그것인데, 사진설명의 내용은 이렇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예술인 문화행동'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담장에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조각보를 설치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되며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12년 동안 운영된 형제복지원에선 513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5일 이 사건의 비상상고를 권고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이 기사내용의 화두는 단연 인권과 적폐청산 및 피해자에 대한 구원, 역사바로잡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절절하게 한 것은 이러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조각보'라는 단어이다. `조각보'는 자투리 헝겊을 대어 만든 보자기를 말한다. 작은 헝겊 조각조차 버리지 않고 살뜰하게 모아 만든 보자기에는 한국 전통의 조형미와 더불어 늦게 귀가하는 식솔들의 허기를 달래 줄 음식을 소중하게 감싸는 정성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2013 청주공예비엔날레 당시 `조각보'의 전통 방식을 활용해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뒤덮는 설치미술을 기획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어쩌다 그런 과감하고도 무모한 시도를 했는지 아찔하기도 하지만, 당시 `녹색수도 청주'였던 청주시의 슬로건에서 착안한 것은 분명하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산책길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현수막이 함부로 나뒹구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다 시도한 것이 공예비엔날레 행사장 전면을 뒤덮는 조각보 프로젝트이다.
생각에서 완성까지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현수막의 색깔이 예상보다 다양하지 않았고, 그나마 재활용할 부분을 일일이 잘라내야 하는 `해체'를 먼저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라 낸 헝겊 조각을 다시 이어 조형미를 갖춰야 했고, 이를 다시 거대한 크기로 되살리는 일은 하나하나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혹시 모를 가을 태풍과 높이 30m, 길이 100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조각보 설치와 안전성 확보도 큰 문제였다. 전체를 하나의 조각보로 만들려던 계획은 숙고를 거쳐 가로 세로 1.6m 크기의 픽셀로 나누고, 이를 다시 4면 가운데 2면만을 고정해 바람에 펄럭이는 효과를 추가했다. 6달에 걸쳐 진행된 준비기간 동안 참여한 시민은 3만여 명, 버려질 처지에서 작품으로 환생한 현수막만 해도 30만 톤, 아름답게 이어진 천 조각은 무려 80만개에 이르는 역작이었다.
나는 이러한 시도를 발상의 전환이면서 시대상황을 읽어내는 정체성의 확립, 그리고 과감한 도전과 김성심씨를 비롯한 참여 작가와 시민들의 조화와 희생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나 혼자의 기획과 아이디어는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가을 냄새가 본격적으로 온누리에 번지면서 각종 축제가 들뜬 마음으로 시민을 유혹하고 있다. 2013 청주공예비엔날레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일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고 있으나, 여전히 관찰에 적지 않은 신경을 쓰고 있음은 어쩌면 나의 본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씁쓸하다.
나는 최근에 청주읍성축제와 괴산고추축제를 다녀왔다. 청주읍성축제에서의 거리퍼레이드와 각종 행사는 주민 참여가 핵심을 이룬다. 괴산고추축제 역시 축제를 통한 농업특산물의 홍보와 판매라는 핵심 전략과 더불어 각 읍·면별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철저한 지역성을 자랑한다. 2003년 청주직지축제와 2005년 직지상 시상식,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축제들을 처음 기획하고 연출해오면서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권위적이었는지, 두 축제를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축제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그저 바라볼 것만을 강요하다시피 했던 전문의 영역에서 내려와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체감과 참여형 축제로 변모하고 있다. 긴장하고 실수 좀 하면 어떤가. 그들의 유쾌한 몸짓과 박장대소,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흥'이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 즐겁게 하는데... 평범함은 극단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