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세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사인 눈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눈을 보고 가장 마음이 설레는 사람은 아마도 어린 아이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눈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을 시로 읊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작시 규칙이 엄격한 한시(漢詩)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홉 살 난 어린이가 지은 눈에 관한 한시를 보는 것은 희귀한 일이 될 터인데, 여기 그 주인공 어린아이가 있으니 조선(朝鮮)의 시인 정창주(鄭昌胄)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이 영설(詠雪)이라고 이름 붙인 시를 보기로 하자.
눈을 노래함(詠雪)
不夜千峯月(불야천봉월) 아직 밤 아닌데 봉우리마다 달이요
非春萬樹花(비춘만수화) 봄 아니지만 나무마다 꽃이 피었네
乾坤一點黑(건곤일점흑) 천지에 오직 한 점 검은 빛은
城上暮歸鴉(성상모귀아) 성 위에 저물녘 돌아가는 까마귀 한 마리
아홉 살 철없던 어린 시절 시인은 어느 겨울날 대설(大雪)을 마주하였다. 삭막하기만 하던 겨울 천지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순백의 공간으로 바뀐 것을 보고 어린 시인의 시심(詩心)은 더 이상 잠재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에다 후천적 노력이 더 해져 만들어진 시인의 시적 능력이 비로소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시인은 소복이 쌓인 눈에서 발하는 은은한 빛을 보고 밤에 뜨는 달을 연상하였다. 멀리 보이는 수많은 산봉우리에 모두 달이 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밤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마다 꽃이 피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봄이 아닌데도 말이다.
밤이 아닌데 달이 뜨고, 봄이 아닌데 꽃이 피었다고 눈 내린 풍광을 읊은 시인의 나이가 고작 아홉 살이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성숙하고도 절묘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달에 비유해 은은하고 밝은 눈빛을 묘사했고, 봄꽃에 빗대어 눈의 아름다움을 말한 시인은 마지막으로 눈의 새하얀 빛깔을 묘사하고자 하였는데, 이 장면에서 시인의 재기는 극에 달한다. 성 위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가 세상에 있는 유일한 검은색이라고 읊은 것이다. 흰 것을 드러내기 위해 검은 것을 보여주는 역발상은 천재가 아니고는 생각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춥고 삭막한 겨울날, 소복이 쌓인 흰 눈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다. 눈을 보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연상해 보고, 그것을 글로, 그림으로, 노래로 표현한다면, 그 삶은 참으로 아름다워질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