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헌책방에 나갔다가 음악평론가 강헌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샀다.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대중음악을 다룬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밥 딜런'에 대한 글을 읽는 즈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기막힌 우연과 필연은 말 그대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 아닐 수 없는데, 살면서 이런 데자뷔(기시감)를 적지 않게 경험한 나로서는 또 한 번의 신비로움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중음악 가수 `밥 딜런'이 결정된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다.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뒤따라 다니는 `밥 딜런'의 노래들은 장르적으로 모던 포크(Modern Folk)에 해당한다. 민요인 포크(Folk)에서 파생된 모던 포크는 그 특성상 민중적 감수성을 기본으로 한다.
모던 포크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체제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모던 포크 문화는 대중음악 중에서도 음악적 요소보다는 문학적 요소, 다시 말해서 선율이나 리듬보다는 `가사(노랫말)'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음악이었다.”라고 강조한다. 덧붙여 “모던 포크 자체가 말의 음악이고, 말의 음악이라는 것은 의미를 담은 음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체제 저항적”이라고 말한다.
(모던 포크가)저항적이든 전통적 가치 중심을 지향하든 간에 문제는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결정이 예술의 표현 방식이거나 전달 체계에 일대 큰 변혁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詩)를 `읽는다'와 `본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하물며 아무리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중시한다 해도 대중가수에 의해 불려지는 노래는 그런 순간적인 인간의 의지, 즉 생각할 틈도 없이 `듣는'행위로 줄달음치게 마련이다.
시가 버려지고,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 노래로라도 `반전(反戰)'이거나 `평화'또는 `극심한 빈부 차이'를 그저 우두커니 듣게 되는 일이 다행일 수도 있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하릴없이 통섭과 융합, 그리고 크로스 오버를 말한다. 말하자면 섞는 것이 대세인 시대인 셈인데, 그런 와중에 고유의 장르가 갖고 있는 진정성은 그 흔적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하기야 노래가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르는 일은 우리에게도 이미 있는데, “밤 드리 노닐”던 신라의 향가가 그렇고, 만두 사러 갔다가 정분이 나는 <쌍화점>의 고려 속요가 그렇다. 그런 노래들이 문학이 되어 당대의 사회상과 정서를 오늘날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Knockin on heaven's door)',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등은 `밥 딜런'의 대표곡들이다.
반전(反戰)과 평화, 빈부격차에 대한 이들 노래는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밥 딜런'의 처세에 따라 애초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읽는'시(詩)와 `듣는'시(詩)의 차이는 어쩌면 감동의 유통기한과 관련이 깊다.
속절없이 반복되는 `밥 딜런'의 `구르는 돌처럼'대신 `여름 가고 가을이 유리창에 물들고/ 가을날의 사랑이 눈물에 어리네/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이 몰아쳐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박상규. 조약돌)는 또 어떠한가.
수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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