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보험 없이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래저래 보험이 장롱에서 잠잔다.
내가 보험을 처음 들고자 한 것은 둘째 아이를 낳고서다. 첫 아이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게 웬일, 둘째 아이부터는 느낌이 달랐다. ‘나 죽어도 마누라가 먹여 살리겠지’라는 태평스런 마음이 안 드는 것이었다. ‘애 하나야 먹여 살려도 둘을 어떻게 먹여 살리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퇴원후 연구실에 있는데 우연히 찾아온 젊은 보험외판원에게 바로 생명보험이라는 걸 들었다. 딴 것 다 필요 없고 나 죽으면 1억 나오는 걸로 해달라고 했다. 1억이면 일단 ‘둘은 키우겠지’하는 생각이었다. 벌써 그 보험은 만기가 다 돼서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건강보험도 아니고 손해보험이었다.
그리고는 제자가 들어달라고 해서 알아서 해달라고 한 보험이었다. 사회에 처음 나가 열심히 하는데 뭐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아 모두 맡겼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벤츠도 BMW도 몰고 다니더니 싫증난다고 지금은 산으로 가버린 친구였다. 덕분에 보험은 들었지만 잘 한 것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좋은 차 몰고 와서 술 한 잔 먹고 사라지더니, 이제는 ‘사부님이 말로 만 떠든 것, 저는 몸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며 도사가 되었다. 보험의 세계가 그만큼 힘든 인간시장이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동차보험일 것이다. 면허증이 있는 사람이면 어찌 되었든 가져야 하는 보험이 자동차보험이기 때문이다. 책임보험이야 차를 사는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의무화되어있지만 그것 갖고는 모자라 이러저러한 보험을 든다. 책임보험은 사람에 관한 보험이지만 기타 민사비용이나 수리비는 개인보험으로 알아서 해야 한다.
다행히도 보험 덕을 볼 일이 크게 없었지만 적지 않은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아침 골목길에서 취객이 내 앞에서 쓰러져놓고 부딪혔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그렇다고 부딪혔다는데 할 말도 없고, 그래서 보험으로 처리해드리겠다고 달래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다. 담당자가 잘 아는 친구였는데 행동이 보통 빠른 것이 아니었다. 찾아가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해보더니 위로금 백만 원에 합의를 보라고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공연히 길게 끌지 말고 돈을 바라는 것 같으니 백만 원을 보험에서 지급할 테니까 그걸로 끝을 내라는 권유였다. 그렇게 쉽게 끝났다. 연구년이라 미국을 들어가야 하는데 찜찜하게 여지를 둘 필요는 없었다. 돌아와 보니 보험료가 급상승하긴 했지만 깔끔한 처리였다.
이제 보험이라는 개념이 어느덧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닫는다. 보험의 보험도 있으니 별의 별 보험이 다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보험의 왕국이 사업의 탄생지처럼 영국이다. 좋은 보험 하나 만들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자본금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동차보험에 대한 불만이 하나 있다. 길을 걷다보니 차가 보도를 넘어온 사고가 있었다. 차는 치웠지만 거리가 엉망이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정리가 되었는데도 문제는 부서진 펜스와 조경수였다. 풀이야 세월이 지나며 자란다지만 금속 울타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과연 교통사고로 벌어진 사회간접시설의 파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나무가 쓰러졌다던가, 길이 파였다던가, 보도블럭이 깨졌다던가, 다리와 길이 탔다던가하는 국가시설에 대한 보상도 자동적으로 책임져주는 자동차보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침마다 눈에 거슬리는 이빨 빠진 울타리를 누군가 고쳐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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