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삶의 여정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5.1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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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왜 죽지도 않는지 모르겠네!” 어머니의 독백이다.

힘드시고 몸이 불편할 땐 그런 말씀을 하신다.

며칠 전 둘째 손자 식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함께 있어 우리 가족이 모인 것이다. 아마 그때 식당 계단을 오르내리신 것이 매우 힘드셨던 것 같다.

사실 어머니의 경우 외식은 무리다. 그러나 남편은 그래도 어머니를 꼭 모시고 갔다.

활동이 별로 없으신 어머니는 집을 떠나 식사한 것이 매우 힘드셨나 보다.

3년 전부터 몸이 허약해지더니 이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너무 힘이 드나 보다. 그런 말씀은 안 했는데 며칠 전에도 그러시더니 오늘 아침에도 죽을 좀 잡수시고 자리에 눕는 중에 그렇게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을 내리지 않는 것부터였다.

시간 개념도 차츰 희미해지더니 밤과 낮이 바뀌어 어린아이처럼 되셨다.

처음에는 식사만 끝나면 계속 주무셨다. 그때마다 되풀이되는 행동들이 하나씩 바뀐다. 돈을 가지고 헌금 봉투에 넣었다가 다른 봉투에 넣기도 하고 그리고 때를 잘 구분하지 못하신다.

밤에도 가끔 교회 간다고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나오신다. 처음엔 어머니의 이런 행동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펴보니 그것은 어머니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세가 들어 뇌의 손상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젠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해도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비어 간식을 챙겨 드린다.

간식은 주로 발효 식품인 요플레와 과일 몇 조각, 때로는 찐단호박이다.

쟁반에 포크와 숟가락 플라스틱 작은 스푼 이렇게 같다 드린 후에 문을 열어보면 포크로 단 호박을 만지고 있다.

숟가락으로 긁는 것은 잊으시고 그렇게 하신다. 처음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행동을 바꾸어 주었다. 이제 어머니에겐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떠나 내가 어머니에게 맞추도록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호박을 숟갈로 긁어서 그릇에 담아 드렸다. 떡과 과일도 어린아이가 먹는 것처럼 작게 잘라 접시에 담아 드렸더니 하나도 남김없이 잡수시고 ‘잘 먹었어요’ 아이처럼 착하게 말씀하신다.

식탁에서 잡숫는 것보다 혼자 어머니 방에서 드시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의 고향은 이북 평안도이다.

생전 말씀도 없으셨던 대문이 두 개 있던 고향집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집에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가끔 착각을 하시는지 어린 시절을 자꾸 생각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의 검버섯은 진해지지만 마음은 더 선해진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살아계시는 동안 편안히 모시고 싶은데 잘 되려는지. 결혼하여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어느덧 35년이 되었다.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나도 서서히 노인의 대열에 가까워지고 있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사람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세월의 흐름 앞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여정인가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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