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 노인종합복지관>지난 주일은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그리스도왕대축일이었습니다. 교회로선 이번 주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으로서는 새해도 묵은해도 별 의미가 없지만 유한한 인간에게는 삶이 어느 지점인지를 가늠할 이정표가 필요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기를 나누고 계절을 나누고 달력을 만들어 시간을 분절시킵니다.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은 기억이 어린시절의 만화책밖에 없습니다. 당장 절실하고 저자의 생각과 딱딱 맞아 떨어져서 이거야 싶은 책도 몇 장을 넘기지 못합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를 가지고 시간과 책장을 나누어야 가능합니다. 나누고 쪼개어 초 단위 분 단위로 훈련된 행동패턴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교육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분절의 의미가 부족한 능력을 기르고 표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한대의 시간 앞에서 좌불안석하지 않고 작심삼일의 의지이지만 그래도 삼일씩 작심한 것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지요.
지난주의 갑작스러운 추위로 인해 몇 잎 붙어있던 잎들이 와르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니 더 한층 인간의 유한함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지난해이던가요 만 년 전의 시베리아에 살던 코끼리들이 발굴되어 위를 열어보니 먹었던 풀잎이 소화되지도 않고 파란색인 채 고스란히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만년이라니 그러면 100살을 산다 해도 백 번을 더 살아야 하는 시간인데, 누워있는 냉동코끼리는 바로 어제 그저께 초원을 누빈 듯이 보였습니다.
이즈음이면 시편에 있는 모세의 기도를 외게 됩니다.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있는 밤과 같사오니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시편 90, 4∼5)
어제도 분명 오늘로 살았는데 지나고 보면 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가 앞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에 기초한 삶을 분명 사노라 하는데 지나고 보면 복음은 멀리 있고 분절된 시간 단위 속에서 분절된 생각과 행동으로 살았구나 하는 자책이 듭니다. 시간과 하루하루의 일과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아기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대림시기에는 또 많은 각오와 준비들이 앞설 것입니다. 그렇게 분주하게 오늘을 충실히 사노라 할진데.
그래서 이번 대림에는 새해를 위한 각오보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또 내일들이 하루와 같은 우리 주님과 일치해 있기를 다만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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