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 것인가 물들일 것인가
물들 것인가 물들일 것인가
  • 백범준 작명철학권 해우소 원장
  • 승인 2024.08.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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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근주자적 근묵자흑 (近朱者赤 近墨者黑)

진(晉)나라 부현(傅玄)의 잠언집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수록된 구절로 붉은 먹을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물든다는 뜻이다.

한편 순자(荀子)의 권학(勸學) 편에는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옆으로 자라는 쑥도 곧게 자라는 삼밭에 있으면 도와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자라난다는 뜻이다.

이것을 짧게는 `삼밭에서 나는 쑥'이라는 의미의 마중지봉(麻中之蓬) 네 글자로 쓰기도 한다. 또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삿짐 세 번 꾸린 맹자(孟子)의 어머니 급(伋)씨의 유명한 일화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의 귤화위지(橘化爲枳) 모두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만큼 주위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여 강조한 말들이다.

물론 사람에게 주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도 모른바 아니다. 현재 처해진 환경이 나쁘다면 좋은 환경으로 옮기거나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 또한 모른바 아니다.

허나 나쁜 환경임을 자각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는 사연들은 처해진 나쁜 환경의 수만큼 존재한다. 바꾸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없는 환경은 놔두고 그 환경에 반응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지금도 하고 있다. 세상에 물들어 살다보니 얻어도 들었고 주워도 들은바 있으니 주위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떠한 태도로 대응하는지에 따라 사람도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유형은 주위환경에 쉽게 물드는 이들이다. 이 유형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유형으로 주위환경이 특히 중요하다. 주위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좋은 것 보다는 나쁜 것에 물들 확률은 더 높다. 잘 알듯 세상이 그렇다. 확실한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인 청소년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대다수 인간의 유형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주위환경에 휩쓸리며 살고 있다면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이 하면 따라하고 남이 가면 따라가고 남이 사면 따라 사고 남은 하고 가고 사는데 나는 못하고 못 가고 못 사면 배 아파하며 남과 비교하며 사는 이들이다. 탐진치(貪瞋痴) 삼독의 번뇌에 빠져 사는 대부분의 중생(衆生)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나쁜 환경을 일부러 멀리하는 이들이다. 본인 스스로도 환경에 쉽게 물드는 어쩔 수 없는 범부(凡夫)임을 일찍이 인지하고 나쁜 환경과의 접촉을 멀리하여 물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들이다. 자신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는 이들이나 장소와 거리를 두는 이들인데 까마귀 노는 곳에는 가지 않는 백로 같은 사람들이다. 종교를 불문하고 재가(在家)와 출가(出家)도 불문하고 올바른 수행의 길을 걷는 이들이다. 흔히 말하는 깨달은 자들이다.

다음의 유형은 어떤 환경 안에서 살더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환경이란 단지 풍경일 뿐이다.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 연꽃 같은 이들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삶을 살아가는 깨달음을 넘어선 일명 깨친 자들이다.

마지막 유형은 세상에 아름다운 물을 들이는 사람이다. 주위의 나쁜 환경을 좋은 환경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희생이 동반되더라도 올바른 신념을 갖고 선한 영향력으로 주변과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유형의 사람들인데 대표적으로 독립운동가들 같은 분들이다. 즉 행동하는 양심이다.

나쁜 물들고 살고 싶지 않다면 하나만 기억하라. 모르면 묻어가려하지 말고 물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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