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콩탁람 사원 기록물 및 필사본(1645~1980)
마카오 콩탁람 사원 기록물 및 필사본(1645~1980)
  • 양주희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주무관
  • 승인 2024.07.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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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양주희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주무관
양주희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주무관

 

“여자가 재주가 없는 것이 덕이다.”라는 명나라 시대의 전통적 관념은 오늘날에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생각이었다.

여성 억압의 대표적인 사례인 전족은 1900년대 초에야 중국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선교사와 중국 개혁가들이 전족 철폐 운동에 앞장섰고 중 한 명이 바로 장수보, 후에 관본 대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1924년 관본 대사는 콩탁람 사원을 성별과 관계없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는 최초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이 대학은 마카오 세나도 광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세계대전 당시 본토에서 피신해 온 승려와 지식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23년 5월 콩탁람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 1645년의 불교 경전을 포함해 6000여점이 넘는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콩탁람 사원의 기록물 컬렉션은 명나라 후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2300여권의 고서, 필사본, 바이유 경전, 고전 사진, 회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사원 승려들과 지식인들은 마카오와 중국 본토, 주변 지역의 여성들을 위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을 통해 이 기록물들을 수집하였다.

관본 대사가 여행 중에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마 승려들이 야자수 껍질에 새긴 불경 등 사원 기록물은 현재 매우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본 대사는 1860년대 후반 광둥성 샹산 현(현 중산 현)에서 태어나 1894년 마카오로 이주하여 대중에게 개혁 사상을 전파하고 아편 흡연을 중단하고 전족 관습을 폐지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콩탁람 사원의 여학생들에게 불교 가르침 외에도 바느질과 주판 사용법을 가르쳤다.

이처럼 관본 대사의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노력은 마카오와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세계대전, 중국 본토 내 내전과 중일전쟁 등 많은 사회적, 정치적 변동 속에서 비교적 평화로웠던 마카오는 많은 지식인과 승려들이 피신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후 이러한 지식인들과 승려들은 마카오를 떠나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사원에서 얻은 지식을 전파하였다.

관본 대사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성의 권익 증진과 교육 기회 확대, 종교적 관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마카오를 넘어 전 세계의 사회적 진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기록물들은 여성 인권과 평등한 사회 구현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가치로 평가받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한 사례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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