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담쟁이 … 밤고개의 늦장
여름 담쟁이 … 밤고개의 늦장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4.07.0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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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늦은 출발이다. 작년 말, 출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아니 지킬 수가 없었다. 한없이 반복되는 거짓과 안일함이 이 지경으로 몰았다. 반복되는 요청은 은행 금고의 벽에 가로막혔다. 가로막힌 벽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이는 청옹성의 성지기다. 성안에 있고 성만 지키면 되니, 성안에서 편안하면 되는 것이니,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려놓았으니, 나올 생각이 없으니, 성 밖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다. 잘 차려입고 어깨에 힘만 잔뜩 주면 그만인 것을, 요청 따위나 절박함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직접 살 공간이 아니니, 들어갈 상황이 안되거나 거기서 병들어 죽던 내 알 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인지했음에도, 뭐 그리 대단한 일인 듯싶어 잠시 나와봤다. 요청이 성화같으니 듣기 싫어서라도, 이제야 마지못해 들어준다. 혹 문제가 되어 성주가 알면 안 되니 말이다.

주변이 뭐라 해도 마냥 뒷짐이다. 관심 따윈 아예 없는 듯하다. 모든 것은 돈이 해결할 것이다. 서류만 문제없으면 될 일이니, 만신창이 현장의 상황은 알 바 아니다.

재생 웃기는 소리다. 하다 만 공사, 엉망이어도 재생이라 우기면 그만이다. 원형을 보존하는 일이 재생이란다. 그래서 튀어나온 못하나 철근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깨지고 걸려 넘어질 상황도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다. 철판이 튀어나와 벽이 깨져 떨어질 상황에 보존이라고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튀어나와 정리가 안된 전선은 머리에 닿는다. 새로 설치한 전선인데, 벽돌 사이 줄눈을 제대로 안 넣어 구멍이 뚫려있는데, 시멘트 덩어리가 벽에 바닥에 덕지덕지 덩어리로 묻어있는데, 단열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샌드위치 패널로 덧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환풍구가 없는데, 이 또한 재생인가? 재생의 콘셉트는 튀어나오고 정리 안 된, 하다만, 방치된 상황의 나열이다.

결국 애간장을 끓이고 있는, 장소를 공간으로 만들어갈 사람이 움직여야 할 일이다. 재생,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것에는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일 때 가능하다. 터전에는 가꾸어야 할 이야기와 가꾸어갈 사람이 함께 늘 분주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전에 있었던 것과 새롭게 이어갈 것의 연결이다. 이야기는 버려진, 버려야 할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많아야 한다. 그 많음 속에서 하나의 줄기를 찾아야 한다. 공간이란 이야기가 들어가 새롭게 자랄 수 있는, 그 전에 없었던 에너지가 새롭게 채워지는 것이다. 공간을 만들어갈 사람이 몫이다. 사용해야 할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 사용자가 공급자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마음이 급하다. 이제껏 단절된 장소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배수가 잘되는 터전을 원했건만, 수생식물을 키우는 웅덩이로 만들어 놓았다. 물이 빠질 수 없는 장소를 배수가 될 수 있도록 구멍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썩지 않도록 건강한 흙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주변의 이야기, 응원과 지원, 협력은 양분이 될 것이다.

이랬던 저랬던 시작을 해야 하니, 출발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한탄만 할 상황이 아니다. 뚫을 수 없는 벽이라면 돌아가고, 넘어가고, 그도 안되면 바닥으로 기어들어 갈 일이다. 가는 길은 많다.

늘 그렇든 고민과 동시에 몸이 움직인다. 여린 덩굴손이지만 시작하면 멈춤은 없다. 잠시의 머뭇거림은 많은 것을 감싸고 어루만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담쟁이가 아니다. 여럿이 함께 하니 좀 더 쉽게 덮을 수 있을 것, 험악한 장소를 생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소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제 여섯 포기의 담쟁이가 자리를 잡는다. 하루의 한 시간 일분일초가 아깝다. 밤이라,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는 이유가 되질 않는다. 흐르는 땀이 억수처럼 퍼붓는 비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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