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울질 하랴, 존재의 무게를!
누가 저울질 하랴, 존재의 무게를!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4.04.0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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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마음 밖이 시끌시끌하다. 타인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태도를 가진 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의 아우성으로 어수선하고, 너희를 위한 마음에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알라며 상황을 짓누르려 항변하는 소리가 섞여 소란스럽다.

문제의 단초는 모두가 `함께'할 때야 비로소 집단이 굴러간다는 오래된 논리에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문제의 현상을 바로 보기는 쉽지 않다. 시쳇말로 눈에 콩깍지를 한 겹 두르고 보기에 그렇다. 이미 내 마음에 있는, 내가 희망하는 방향에 목표를 두고 있는 콩깍지는 문제를 나에게 유리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상황을 오독하여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지 못하는 시발점일 게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이야기꾼들은 사물에 생명을 불어 넣고, 꿈이라는 가상 세계를 이야기에 집어넣어 재미와 교훈을 주고 있다.

바느질을 좋아하는 아씨와 바느질에 꼭 필요한 일곱 친구들이 아씨방에서 논쟁을 벌이는 이야기인 조선말의 책 <규중칠우쟁론기>도 그 부류에 속한다. 재미와 교훈이 있다면 아이들에게도 접할 기회를 주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지사.

어른들이 그 일을 해냈다. <아씨방 일곱 동무>란 제목으로 그림책 작가 이 영경 님은 글과 그림을 비룡소에서는 출판을 맡아 책을 냈다.

바느질을 좋아하고 잘 하는 아씨가 잠든 사이 바늘, 실, 골무, 다리미, 가위, 자, 인두는 서로 옷을 만듦에 있어 가장, 제일 중요한 일을 해 내고 있음을 토로한다. 본인의 공을 내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남을 헐뜯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상대방의 존재 가치가 적어질수록 나의 존재감이 상승할 거라 여기는 우리네 세태를 꼬집는 비유다.

농 삼아 했던 말들도 돌고 돌면 서로의 살을 에이고 파고 들어와 폐부를 찌르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평온할 때, 각자 본연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 내고 있고 그만한 대우를 받는다 여길 때는 뭐라 말할 필요도 없이 화목하게 지낸다. 그러나 관계에 틈이 생기고 벌어지는 기미가 보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표면 아래에 숨어 있던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씨방에서 벌어진 사태도 인정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내가 더 많은 시련을 겪고 있음을 피력하느라 애쓴다. 오후의 단잠에 빠져 있던 아씨, 시끄러움에 눈을 뜬다. 서로의 자랑질이 고까웠던 아씨도 보탠다. 내가 아니면 너희들 끼리 어찌 옷을 짓겠냐며 타박을 하고 다시 잠이 든다.

아씨가 반성 할 기회를 작가는 꿈속에서 경험하게 한다. 일곱 친구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황을 만들어 친구들의 존재 가치를 깨우치게 한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하고 있는 본연의 일은 타인의 잣대로 평가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아씨방 일곱 동무>는 개별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 주며 함께 할 때서야 모난 돌도, 둥근 돌도 어우러지며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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